얼마 전 피아니스트인 한 선배로부터 작년에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한 그의 CD 몇 장을 선물로 받았다. 이런 음반이 나온 것을 왜 신문사에 알리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 신문에 기사가 났었으니 그걸로 충분하죠 뭐. 젊었을 때는 가능하면 나의 음악활동이 여러 신문에 보도되기를 원했지만, 이제는 내 이야기가 신문에 나고 안 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졌어요. 젊었을 때는 내가 1백을 가졌다면 1백30정도로 알려지는 게 기뻤는데 지금은 누가 1백30이라고 평가해주면 사기를 친 것처럼 민망해요. 남들이 나를 70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편안해요. 아마 이런 것이 나이를 먹는 것인가 봐요”
그동안 나는 많은 선배들로부터 ‘나이 먹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고, 그 이야기들은 생의 길잡이가 되곤 했다. 그 선배의 이야기는 편안하고 적적한 50대 중반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 모두가 젊은날에는 1백인 나를 남들이 1백30이라고 평가해주면 기뻤다. 젊은날의 우리들은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치닫기 위해서 그같은 ‘과대평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과소평가’가 편안해진다는 그 선배의 이야기는 머리 숙인 벼 이삭이 물결치는 황금들판을 생각게 한다.
많은 사람들의 생을 바라보면 젊은날은 아름답고, 중년은 일이 많고, 노년은 고요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젊은날 보다는 중년이, 중년보다는 노년이 더 아름다운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은날이 우리의 생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젊은날은 방황과 좌절, 사랑과 실연, 꿈과 절망이 다 아름답다고들 말한다. 젊은 시절이 늘 아름답게 묘사되는 것은 그 시절이 매우 짧아서 추억 속으로 빨리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중년은 길고 고되다. 젋은날이 가버리고 나면 나이와 관계없이 사실상의 중년이다. 사회에 적응하고, 직업에 적응하고, 결혼에 적응하고, 부모노릇에 적응하고, 윗사람 아랫사람에 적응하면서 쉴 새 없이 일하는 시기가 중년이다. 이미 틀 안에 들어왔으니 방황이니 갈등이니 절망이니 하는 것들은 더 이상 아름답지가 않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가야 한다. 일에 지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이사이에 긴 장마속의 무지개처럼 성취감이 슬쩍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사람들에 따라 큰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비생산적인 갈등에 휩싸이기 쉽다. 무력감, 허무감, 소외감, 늙어간다는 충격, 가벼운 자폐증까지 온갖 감정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거나 조용히 마음속에 고여 가거나 한다. 세상을 바라보던 눈이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의 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로 집중된다.
이런 고비고비에서 우리는 선배들을 만난다. 나이 먹는 일을 잘 극복한 선배들은 어느 나이에 있든 아름답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는 바로 노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선배들도 있다. 그들의 노년은 적막한 시기가 아니다. 신록의 잎을 피워 짙은 녹음을 이루고, 찬란한 단풍으로 불타다가 마침내 온잎을 떨군 채 나목으로 선 노년의 아름다움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들에 비하면 젊음이란 아름답기보다 단지 예쁜 것이다.
지난 일요일 한국일보 1면의 ‘한국 시단’에서 김광규 시인의 ‘갈잎나무’를 읽었는데, 그 시에도 나이 먹는 과정에서 도달한 한 아름다움이 있다.
‘갈잎나무 그림자를 가을이 깊어/갈수록 흐려지고/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뭇잎들/이제는 나무에 매달리지 않고/한개도 남지 않고/떨어진다 울긋불긋/흩날리며 미련없이 낮은곳으로/내리는 나뭇잎처럼 떨어져/나도 이제는 훌쩍 떠나고 싶지만/아스팔트 위에는 싫고/콘크리트 지붕 위에도 싫고/산골짜기나 들판에 쌓이고 싶은/마음 남았으니 아직도/나뭇잎처럼 되기는 멀었다/갈잎나무처럼 살기는 틀렸다’
김광규씨는 나와 동년배인데 그가 ‘…내리는 나뭇잎처럼 떨어져/나도 이제는 훌쩍 떠나고 싶지만/…산골짜기나 들판에 쌓이고 싶은/마음 남았으니/나뭇잎처럼 되기는 틀렸다…’라고 노래한 마음을 나는 알듯말듯 함께 느끼고 있다.
낙엽처럼 떨어지되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위에는 싫고, 부드러운 들판이나 산골짜기에 쌓이고 싶은 그는 ‘나뭇잎처럼 되기는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 한그루 갈잎나무처럼 될 것이다.
이 가을에 나는 좋은 선배와 이야기를 듣고, 좋은 시 한 편을 읽었다. 그래서 나는 늘 출렁이는 황금들판을 보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