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기름진 고기, 매운 것, 단 것은 진미(眞味)가 아니다. 진미는 다만 담백할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만을 추구하려는 요즈음의 우리가 귀담아 두어야 할 말이다.
우리 음악(한국음악)을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흔히 우리 음악의 무미건조함에 그 이유를 대고 기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아무리 들어도 맛이 없어서(?) 흥미를 못 느끼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많은 경우가 맛을 제대로 음미하여 보지 않고 그렇게 단정 지어 버리고 있다. 제대로 씹고 맛을 음미하여 소화되는 단계까지 가기도 전에 미리 맛이 없다고 뱉어 버리는 이치인 것이다.
우리 음악의 담백성은 악기의 재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로 사람의 음역에 거스르지 않으려 하는, 전혀 인공적이지 않은 소리가 우리 음악이 추구하는 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들을수록 정감어리고 씹을수록 맛이 새록새록 우러나는 음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토담집에서 은은히 울려 나오는 가야금의 선율, 선비의 사랑방에서 조용한 저녁나절에 흐르는 거문고 선율, 이 얼마나 정겨운 소리인가. 또 질펀한 동네잔치에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우리의 판소리, 행진할 때 웅장하게 연주되는 고취음악, 이 모두가 우리의 정겨운 음악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음악을 들을 때에는 서양음악의 꽉 짜인 화성의 울림과 비교해 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음악의 3요소 즉 선율, 리듬, 화성이 모두 갖추어진 것만이 훌륭한 음악인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 지구상에 있는 많은 음악 가운데 위의 3요소를 모두 갖춘 음악이 얼마나 있나? 음악의 3요소라고 우리가 배운 것은 서양음악의 특정 시기의 특정 음악의 3요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즉 잘못된 개념정의인 것이다. 우리의 사물놀이는 위의 3요소 가운데 리듬만 가진 음악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열등하지 않다. 오히려 리듬 하나만 가지고도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팬들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세계적인 음악인 것이다. 서양 근대음악의 3요소인 선율, 리듬, 화성 가운데 리듬만 갖춘 음악이라고 해서 그 누가 재미없는 음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무릇 우리나라의 음악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모든 음악은 다 그 나름의 맛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맛을 맛으로 인식할 수 없는 이유는 잘못된 우리의 귀 때문이다. 자기가 그려놓은 왜곡된 음악 이상을 모든 음악에 짜 맞추려 하고 그 크기에 맞지 않는다 하여 거부할 때 음악편견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음악의 담백한 맛을 서양의 꽉 찬 교향곡 음악의 맛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리려 한다면 양쪽 음악 모두 진미를 맛보기는 힘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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