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싶어 할 때 매질을 하면 자연스럽게 소리내어 울 수 있듯이 신앙심이 약해 냉담에 이르게 된 신자들에게 공소마저 없어졌으니 완전 냉담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후 나는 냉담한 상태에서 3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1970년 1월 5일자로 취직이 됨에 따라 부모형제를 떠나 나 혼자 생활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다니게 된 직장에서 약 50m밖에 되지 않는 곳에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차라리 보이지 않으면 덜할텐데 하느님앞에 선뜻 나설 용기가 없는 나에게는 너무도 가까이에 있는 하느님의 집이 나를 몹시나 괴롭혔다.
특히 주일날이 되면 하느님의 집에 모이라는 성당의 종소리가 나의 가슴을 울리며 더욱더 아프게 하였다. 성당의 종소리는 날이 갈수록 나를 더욱 괴롭혔고 그 괴로운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는 없었지만 몇 주 후에는 꼭 성당에 나갈것이다 라고 종소리가 울릴때마다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나는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굳게 결심을 하고도 (하느님을 멀리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성당을 눈앞에 두고서도 다음주 또 그 다음주로 미루곤 했다. 그러던 중 그 해 11월13일에 나는 결혼을 하여, 2평정도 되는 사글세 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요즘 신혼부부들이 그 당시 우리 신혼살림방을 보았으면 배꼽을 잡고 웃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는 작은 방 한 칸에 박봉으로 생활하면서도 불평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으로 내 아내가 모르는 한가지 근심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때까지 냉담 생활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그렇게도 괴로워 하면서 까지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나는 3년이란 세월을 또 그렇게 보내면서 1973년 12월 24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날은 숙직당번이므로 사무실에서 밤을 새워야만 했다. 난로앞에 앉아 창밖으로 성당을 바라보니 찬란히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된 작고 아름다운 꼬마전구에 불빛이 반짝거리고 성당안에는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어 구유에 누어 계시는 모습이 내 눈에 선하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내 머리카락을 쥐어잡고 괴로워했다. 오늘 저녁만은 넘기지 않고 꼭 자정미사에 참례해야 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무심한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벽시계는 어느새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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