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저…” 오래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저…” 한 학생이 머뭇거리며 무언가를 내놓는다. “제가 어제 만들었는데요,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수줍어하며 내놓은 물건을 얼른 펴보니 매듭으로 예쁘게 만든 묵주였다. 당시만 해도 아직 가톨릭에 입교하기 전이어서 묵주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래, 참 예쁘구나, 고맙다.” 그저 받아서 한쪽에 넣어 놓았지만, 그 자그마한 선물이 가끔 생각이 나는 것은 그 학생의 따뜻한 마음이 보여서일게다. 그 학생의 머뭇거리는 순수함이 예쁘고, 그 정성이 담긴 따뜻함이 예뻐서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하면서 힘들어지는 때가 있다. 그러나 가장 힘든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당하고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때라 하더라도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주고받을 때엔 그 어려움이 어려움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따뜻한 마음의 보이지 않는 힘 때문일 것이다.
학문의 길을 걷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이겠지만 이 길은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의 길이다. 혼자 걷는 고독한 길이다. 차가운 머리로 냉철한 이성으로 칼을 휘둘러야 하는 싸움터이다, 그러나 ‘차가운 머리 따뜻한 마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학문을 하되, 따뜻한 마음은 잃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늘 하게 된다. 학문하는 이들이 학문하는 정신에서 벗어났을 때 그것이 무서운 무기로 작용하게 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미 증명이 되지 않았던가. 누군가가 지식인과 지식기사를 구분하여 놓았듯이 학문하는 이들이 자신을 단순한 지식전달자의 역할로 만족하고, 학문을 하나의 기능으로서만 인식한다면 이는 아마도 지식기사로 가는 길이 아닌가 싶다.
이제 단풍이 한창이다. 점점 모습이 달라져가는 가을산을 바라보니 늘 거기에 태연하게 지키고 있는 산의 마음을 닮고 싶은 생각이 든다. 늘 거기에 서 있으면서 자연의 변화에 흔들림 없이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는 산의 따뜻한 마음, 바야흐로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그리워지는 때가 왔다. 따뜻한 마음 한 자락,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이 가을과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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