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의 수요일은 비바람 때문에 우산마저 소용없는 그런 험상궂은 날씨였다. 태양의 정열을 닮아가던 붉은 덩쿨장미 꽃잎이 낙엽지듯 길거리에 수북이 떨어진 모습에 일말의 안타까움을 느낀다. 한쪽이 야산의 과수원밭인 이 길은 꽃길이 되었다. 장미꽃을 보면 성모님 생각이 나기에 레지오 회합날임을 상기하며 일찍 퇴근했다. 솔직히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그날 회합하러 가기 싫었다. 춥고 비바람 치는데다가 성당가는 길은 황토길이라 별로 즐겁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먼지투성이의 길이기에 많은 묵상거리를 주는 길이기도 하지만 그날은 가기 싫은 마음뿐이었으나 신앙의 연륜이랄까 시간이 되니 발길은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의 몸은 세찬 폭풍앞에서는 찢어지고 구부러지고 마는 바람으로 날아갈 지경인데 우산 하나에 의지하자니 우산이 부서질것 같았고 자연앞에서 손바닥만한 천조각에 의지하는 모습이 일순간 너무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로수가 뽑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묵상하게 되었다. 세상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우산 즉 권력, 재물, 명예 따위에 의존하며 사는 것일까. 그것은 환난의 비바람을 얼마만큼 막아줄 수 있는 것일까(매스컴에 연일 오르내리는 뜬 구름같은 부귀영화, 권력의 종말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세찬 우산처럼 우린 너무나 약한 것을 얼마나 최고인양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진실된 신앙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 어느것에도 동요되지 않는 우산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라는 커다랗고 견고한 우산이 아닐까. 그것을 써야만 온갖 시련의 비바람을 막아내며 캄캄한 세상을 가로질러 따뜻한 불빛과 평화가 있는 성당(천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비바람 치는 날에 함께 걸으며 대화해주신 아버지 찬미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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