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벗어나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길을 달리면서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고 주님께 비를 살살 내려주길 바라면서 천진암에 도착하니 세찬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있었다. 집채만한 바윗덩이를 인부들이 옮기고 있었다. 드넓은 미래의 대성전터를 바라보고 있으니 감개가 무량했다.
2백여년 전 우리 조상들을 생각해 보았다. 저기 계시는 이벽 권일신 권철신 등 다섯 분의 조상님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내가 이렇게 서 있을 수 있을까?
1백년 후의 우리 후손들을 위하여 나는 지금 어떤 순교를 하여야 할 것인가. 다섯 분의 무덤앞에서 ‘나는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이기적이고 오만하기도 하고 몰이해하면서 또 남의 마음도 아프게 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는지, 남을 도울 때는 왜 몸이 느려지는지, 몸보다 마음의 때인 게으름인지… 내 자신을 돌아보며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이 비가 축복으로 느껴졌고 흙탕물에 발이 빠져도 즐거웠다. 나 자신의 때를 씻어 주는 정화수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잠깐 비춰진 햇빛은 성인들께서 잘 가라고 전송해주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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