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그리스도왕 대축일 전 주일인 11월14일은 모든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도(使徒)로 불리워졌음을 서로가 일깨우면서 그 사명과 책무를 다하기로 다짐하는 평신도의 날이다.
오늘은 군종교구를 포함한 전국 15개 교구 9백여 본당 중 대부분의 공동체에서 매번 미사 중 평신도가 강론을 맡고 평신도 사도직 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특별헌금을 봉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말씀의 씨앗(선교교령 11,15항)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던 그 시대, 신앙 선조들이 동지사(冬至使)를 따라 북경길에 오르던 때와 맞먹는 시기에 우리는 평신도의 날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가난한 교우들이 모아주는 정성어린 여비를 받아 서울을 떠나고서는 몇 차례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 큰 직무를 수행해 마침내 교회를 창설하고 성직자를 영입한 그분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오늘 평신도의 날을 지내는 우리에게는 뜻깊은 일이다.
2백여 년의 역사위에 한국교회는 이제 3백만이 넘는 신자 수를 헤아리게 됐고, 이 가운데 절대다수인 99% 이상이 평신도들이며 소수의 성직자, 수도자들도 평신도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이란 점을 상기할 때 평신도들의 삶이야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평신도들이 과연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교회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직자 수도자들이 잘 살아야 평신도들도 그들의 모범을 따라 잘 살 수 있을 테지만 역으로, 평신도들이 잘 살지 못할 때 수도자들에게 청빈을 거스르게 하고 성직자들을 유혹의 길로 인도하는 결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평신도와 성직자, 평신도와 수도자 사이의 관계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무릇 교회란 ‘모든 사람의 으뜸인 교황의 지도 아래, 그리고 교황과 일치하는 주교들의 지도 아래 있는 지상의 신자 공동체’(평신도 그리스도인 9)인 것이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 평신도가 차지하는 위치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 생활의 새로움에 따라 규정되고 그 세속적 성격으로 구별된다(평신도 그리스도인 15). 평신도 고유의 소명은 ‘현세적 일에 종사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찾도록’(교회헌장 31)불린 것이다. 그러기에 권위주의적인 성직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던 과거의 평신도 모습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고, 유럽이나 미주지역 교회들이 겪는 어려움이 의외로 빨리 우리의 현실로 닥쳐올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현상이 닥치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이를 새로운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극복할 수 있는 태세를 다함께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슬기롭게 대처함으로써 불필요한 갈등 따위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평신도야말로 ‘깨어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때마침 한국평협이 제26회 평신도의 날 강론자료에서 ‘새 복음화와 도덕성 회복’에 역점을 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교적에 올라있는 신자 수에서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이들이 주일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에서 볼 때 ‘새로운 복음화’(교회의 선교사명 33)가 오늘의 한국교회에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짐작이 간다.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자신의 세례성사에 충실하며 그리스도의 사제적(司祭的), 예언자적(豫言者的), 왕적(王的)사명에 어느 정도 참여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우리는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인간생명의 존엄성이 크게 위협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잘 못 살아온 우리는 정치와 경제가 정의롭지 못한 가운데 인간성마저 메말라버린 것을 많이 보아왔다. 직접 낙태를 하거나 방조하면서 죄의식조차 갖지 않는 사회풍토 속에서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정녕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과학의 발전은 인간이 배자(胚子)를 복제하는 실험을 성공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했고 이로써 ‘사람공장’을 예견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평협은 ‘새로운 복음화’와 함께 ‘도덕성 회복’을 외치고 나선 것이다. “천주교 신자라면 어디가 달라도 달라야 할 것”이라고 전제한 오늘 강론자료는 “정직하게 말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며 특히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일 것”을 호소하고 있다. 나아가서는 “직장과 사회에서 바르게 살며 그리스도 예수를 보여주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사는 길이고, 복음을 삶으로써만 자기 자신이 성덕(聖德)으로 나아가고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처럼 복음을 살기 위해서도 오늘의 평신도는 깨어있어야 한다.
사도 바오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있습니다”(1테살 5,6)라는 구절은 이 시대를 사는 평신도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가져오신 혁신(革新)을 한낮에 비유하면서 예수님이 곧 충만한 빛 자체시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밤은 죄악과 도덕적 무질서의 상징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있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이 땅의 모든 평신도들은 깊이 묵상해 볼 일이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혜로워야 하고, 지혜롭기 위해서는 사랑을 지니고 그분 말씀을 생활하는 평신도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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