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7월 서강대학교 부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한 천여 명의 설문결과를 잠시보자. 그 설문결과 중에서 안락사의 법적 허용에 대한 반대는 18.9%였고, 완전 허용(18.4%)과 부분 허용(62.7%)은 81.1%였다. 천주교 신자도 70.4%가 완전 혹은 부분 허용을 찬성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안락사 허용 찬성 이유로는 환자의 고통(61.7%), 주변 고통(32.0%) 의료손실(5.4%)순이다. 영원한 생명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퍽 공감이 가는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안락사는 어원적으로 심한 고통이 없는 ‘편안한 죽음’을 뜻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질병의 고통이나 단말마의 고통을 없애려는 어떤 의학적 개입을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결국 극도의 고통을 종식시키기 위한 ‘안락 살해’ 또는 가족과 사회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울 수도 있는 정신질환 및 불치병에 걸린 비정상아를 여러 해 동안 계속되는 비참한 생명의 연장에서 구제하기 위한 ‘안락살해’를 뜻하는 보다 특수한 의미로 ‘안락사’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작위’를 통해 직접적으로 죽음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안락사 옹호단체들은 이 적극적인 안락사를 하나의 ‘권리’로서 증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는 환자에 대한 일반적 치료나 간호를 제외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의도적 죽음을 초래하거나 더욱 앞당기는 것이다. 교회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누구도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거듭 천명해 왔다. 왜 생명의 절대 불가침성을 강조하는 것일까?
1983년 영국 런던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옹호하기 위한 대회가 열렸었다. 그 대회에서 발표자 프란시스 쉐퍼는 ‘여러분의 생명은 안전한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였다. 그의 강연 중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할 내용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앞으로 이삼십년 동안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고, 계속 증가될 노인들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짊어져야 할 젊은이들의 수가 줄어감에 따라 인간생명에 대해 독특하고 고유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노인들은 점점 더 안락사에의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나이가 40세 이하라면 여러분도 그 가운데 포함이 될 것입니다”
쉐퍼는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인가? 1983년, 당시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서는 태아의 생명을 끊을 수도 있다는 낙태심리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경고하고 있다. 쉽게 요약하자면 태아의 생명이 안전하지 못하다면 그 안전을 침해하는 사람들의 생명도 앞으로 안전하지 못하게 된다는 경고다. 과연 그 경고가 터무니없는 것일까? 우리는 잠시 쉐퍼의 통찰에 좀 더 귀를 기울여보자. “낙태는 그것 자체만을 떼어놓고 따로 생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먼저 생명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낮아졌다는 증거입니다. …낙태를 용인하는 것은 단순히 태아의 생명을 끊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생명의 모든 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이해한다. 지금 태아들의 생명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말은 장차 노인이 된 우리들의 생명도 안전치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쉐퍼는 20~30년을 내다보고 이런 말들을 했는데 그러한 일들은 아주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네덜란드에서의 안락사 실태다. 네덜란드에서 사람들은 안락사를 “환자의 요청이 없어도 죽이는 것”이라 부르고 있다. 2년전 리챠드 페닉센(Richard Fenigsen)박사는 네덜란드의 의사들이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들만 아니라 원치 않는 환자들까지도 살해하고 있다는 것을 고발하는 논문을 썼었다. ‘환자의 동의 없는 살인’, 몇 해 동안 안락사의 국제도시랄 수 있는 네덜란드의 안락사 옹호자들은 그러한 사실을 극구 부인했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의회는 공식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본인이 원치 않는 안락사가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 정부 수치에 의하면 본인이 원의에 의한 보다 공개적인 안락사처럼 흔해진 것이다. 지금 네덜란드에서는 본인이 원할 때만이 아니라 본인이 원치 않아도, 육체적 고통 때문만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인 경우에도 안락사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즉 1990년 네덜란드 공식통계에 의하면 네덜란드 의사들이 환자들의 동의로 5천4백여 명을 안락사 시켰고, 그보다 더 많은 5천9백여 명이 환자의 뜻과는 관계없이 살해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 중 적어도 4분의 1은 괜찮은 건강상태 였음에도 아무런 선택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왜 환자들이 동의하지 않는데도 환자를 죽이느냐는 질문에 의사들은 ‘생명의 낮은 질’ ‘환자의 고통’ 그리고 ‘가족의 애로’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안락사의 대상에 노인만이 아니라 기형의 신생아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보도한 미국의 한 주간지에 병실의 침대사진과 그 밑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이 침대는 사람을 살리려는 침대냐 아니면 사람을 죽이려는 침대냐?’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장의 경제적 이기적 만족만을 위하여 귀중한 생명을 소홀히 다루면 언젠가 그 생명 경시적 풍조는 바로 우리 자신의 생명까지도 소홀히 취급해 버리는 때가 온다는 것을. 주는 대로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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