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들어서면서 사회 전체가 성철(性徹) 스님의 입적으로 화제를 뿌리고 있다.
한국 불교계의 큰 별이었던 그의 생애가 조명되고 한 종교인으로서 구도의 길을 걸었던 그 위대한 족적들을 각 매스컴마다 앞 다투어 취재경쟁에 열을 올렸다.
그가 남긴 법어(法語)들은 속세에 사는 우리 국민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줬고 큰 교훈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승에 남겨놓은 재산이 고작 누더기 장삼 한 벌, 도수 높은 돋보기안경, 검정고무신 한 켤레, 몽당 색연필 한 자루 등이라니 속인들에게는 보잘것없는 물건이라 그 욕심 없이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그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텔레비전을 통해 생방송으로 비쳐졌을 때 큰 스님의 죽음에 대해 숙연함과 아울러 불꽃으로 타오르며 승화된 그의 환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다시 깨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정말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죽어야 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
그의 수행을 더듬어 보면서 이 땅의 부끄러운 종교인에게는 설자리를 잃게 했고, 믿음이 부족한 신앙인에게는 다시 믿음을 충만케 해주었다.
다비식이 끝나고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사리’ 문제로 떠올랐고 과연 사리가 몇과나 나올까 하는 인간적 욕심으로 관심이 집중됐다.
애써 불교계 인사들은 사리가 수행정도를 평가하는 데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몇 번이고 역설했지만 사람들 입에서는 그래도 ‘사리가 얼마나 나올까, 혹시 한과라도 나오지 않는다면…’
이러한 쓸데없는 생각으로 직장마다 일손을 놓고 대화의 핵심이 될 만큼 반호기심으로 관심을 끌었다.
다행히 사리는 석가의 다비이래 최고치에 달한다는 1백여 과로 나타났고 그때서야 사람들은 역시 큰 스님이었구나 생각하며 참다운 종교인으로 칭송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러한 속세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에 따라 불교계에서도 만약 사리가 기대치에 못미칠까봐 벙어리 냉가슴 앓듯 걱정도 했으리라.
인간이란 게 참으로 속물이요, 간사한 지라 더욱 더 그랬으리라. 이러한 풍자를 그린 신문 만평만화가 등장한 것도 다 이러한 것을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예부터 종교는 우리 민족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음의 큰 위안처였다. 어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간에 종교적 이슈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가져다주었다. 간혹 종교인들의 부정이 드러날 때면 혹독하게 몰아붙이고, 심판했으며 성직자에게 도덕적, 윤리적으로 기대하는 심리는 너무도 막대했다.
결국은 성직자들도 다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맹목적인 것을 얻기를 바라며 주문하기가 일쑤였다.
성직자들은 ‘도깨비 방망이’처럼 이 세상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는 착각아래 유명하다고 소문만 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종교를 찾아 발을 잇고 있다. 그래서 각 종교에서는 신도들을 끌기 위해 별의별 소문을 내고 타 종교와 색다른 교리를 만들기에 급급하고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종교적 믿음의 대상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어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간에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종교의 근본적 사명은 ‘인간의 구원’에 있다.
인간의 구원은 곧 ‘사랑’과 ‘자비’가 되고 그 사랑과 자비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종교의 힘은 우리 사회를 밝게 하고 정의의 꽃을 피우게 하며 곧 사람다운 사람이 화합하며 살아가는 한 공동체가 종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참마음과 정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값진 것이며 종교를 안 가진 것보다 가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종교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대개 종교를 갖는 것을 무엇을 바라는 성취를 위한 기복의 도구로 신앙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맹목적인 종교는 언제나 무엇을 해달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러다 무엇이 성취되지 못하면 금방 믿었던 종교를 내던져 버린다.
지난해에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었던 한국 다미 선교회의 10월28일 시한부 종말론의 휴거 소동도 다 이러한 것에 원인이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번 성철종정(性徹宗正)의 영결식에 참석하려고 합천 해인사에 10만 인파가 몰렸다가 교통이 마비되자, 사람들은 대통령이 기독교를 믿기 때문에 교통정리가 미흡하다든가, 올 여름 비가 많이 와 냉해로 농사가 잘 안 되어도, 각종 대형사고가 터져도 대통령이 믿는 종교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우리 국민들의 자기 것에 대한 맹목적인 이기심은 이젠 버려야 할 때라고 본다.
그래서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통해 곧 인간의 보는 눈에 따라 바라보는 사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이젠 세상을 바로보자. 종교의 참 눈빛으로.
‘이 세상이 곧, 천국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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