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가 양적 성장과 함께 한국 천주교회의 위상을 떨친 시기였다면 90년대는 내실화를 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교회의 내실화는 전국 각 교구장들의 94년도 사목교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소공동체 활성화와 가정 공동체의 쇄신 및 성화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본당 거대화의 문제점이 심각하게 노증되고 있는 서울대교구의 김수환 추기경은 그 구체적인 사목방침으로 5천명을 기준으로 한 본당의 분할과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전국 3백만 신자 가운데 1/3인 백만 이상이 서울에 몰려있고, 따라서 전국 평균 1개 본당 3천명의 신자 수에 비해 서울은 7천 명에 이르고, 1만 명 이상이 되는 거대교회도 10여 개나 되는 현실에서 2천년대 복음화를 위한 서울대교구의 결단과 선택들은 얼핏 작아지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급속한 인구의 도시집중과 높은 지가로 야기되는 대도시 거대교회의 출현과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해결방안은 없는가?
첫째, 본당의 거대화는 사제와 일반 신자들의 인간적인 접촉기회를 상실하게 함으로써 공동체적 유대감과 소속감의 결여를 낳게 하며 기계적이고 냉랭한 분위기의 교회를 만들게 된다.
둘째, 본당운영 자체가 본당사목의 주요문제로 부각되며, 따라서 지역교회로서의 사명을 소홀히 하게된다. 사제는 사목자이기보다는 교회의 관리자로 비춰지고, 결국 관료적·권위주의적·폐쇄주의적 공동체로 기울어진다.
셋째, 교회재정의 상당부분이 오랫동안 건축과 건물 관리에 소요됨으로써 사회복지나 선교사업 등이 소홀하게 된다. ‘성전을 짓다보면 마음의 성전이 무너진다’는 말이 있듯이 무리한 재정확보의 과정에서 가난한 신자들은 상대적 빈곤감으로 소외되며, 적잖은 신자들이 물질적인 부담 때문에 냉담하게 된다.
넷째, 제한된 부지에 여러 기능공간을 한 건물 속에 수직으로 중첩시켜 쉽게 처리하는 건축적인 해결은 주변 환경과의 부조화, 기능과 동선의 혼란, 성(聖)과 속(俗)의 불분명, 초월성과 장소성 및 공간성의 상실 등 성당건축의 세속화 현상과 함께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본당의 분할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부지의 확보문제이다. 특히 인구가 급증하는 대도시의 신흥개발지역에서 심각하다. 이를 위해선 교구차원에서 장기적인 본당 분할의 마스터 플랜을 세워야 하며, 여기에는 종교학자, 도시계획가, 건축가 등의 전문가들이 반드시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한 본당의 적절한 신자 수나 관할구역, 시설공간의 구성비율, 성당의 입지 등을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정하거나 획일적인 기준보다는 지역의 특수성에 따른 몇 개의 유형을 설정하여 시행하면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역시 교구 차원에서 전문가가 참여하는 심도 깊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신축성당의 외형적 화려함을 지양하고, 전례적인 동시에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공간구성을 위해 성당건축 전문가와 교회의 축적된 경험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사제의 개인적인 취향과 경험이 우선되는 풍토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며, 교구 건축심의위원회가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마치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토지개발 방식같이 법규의 허용범위 안에서(때로는 위법까지 하면서) 최대한의 건축면적을 확보해 놓고 보고자 하는 사제와 지도급 신자들의 이기적인 자세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필요 이상의 공간을 소공원화 함으로써 배타적인 친교를 극복하고 지역사회와 세상을 향해 열린 마당을 만든다면 적법하게 허가까지 난 성당이 지역주민의 반대로 지어지지 못하는 현실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도저히 분당이 불가능할 경우는 도시공소를 둠으로써 거대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 본당의 규모는 되도록 작아져야 하며 이를 위해 모(母)본당이 자(子)본당을 많이 두어 공동사목 대책을 강구함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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