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지순례를 하면서 나름대로 감동을 받고 느낀 점들이 참으로 많았다. 나는 그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감동하면서 제44차 세계 성체대회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귀향하였다.
나는 그 후 1년간 그곳 도동본당에서 신앙생활을 했으나 가사사정으로 지금 살고 있는 경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으나 부모님께서는 20년을 넘게 냉담을 하시고 계셨다. 우리 8남매 모두가 세례를 받았지만 지금은 나 외에 출가한 누이동생만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뿐 그 외의 형제들은 모두가 냉담을 하고 있으므로 마음 아플 때가 많았다. 출가한 누이동생과 나는 부모님께 말씀드려보곤 하지만 들어주시지 않는다.
형제들에게도 냉담생활을 청산하고 성당에 나올 것을 권했지만 반응이 없을 때는 화가 치밀어 내가 모든 일에 모범이 되지 못한 탓인가 하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근본적으로 신앙생활을 반대하는 마음인 것 같았다.
아버지께 말씀드리면 아버지께서는 하느님을 버린 것이 아니라 다만 성당에만 나가지 않을 뿐이라고 하신다. 나는 언젠가 무당신을 위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 신당을 불사르고 성당에 나올 수 있도록 설득시킨 일도 있지만 나의 부모 형제의 냉담은 회두시킬 능력이 없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다.
나와 내 아내는 기도할 때마다 부모 형제가 냉담생활을 끝내 주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계속 기도하고 있지만 아무런 변화도 볼 수 없기에 현재 내가 바라는 실오라기만큼의 희망은 부모님께서 임종하실 무렵에라도 회개하시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행운을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사가 끝날 때 신부님께서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하고 권고하실 때 모두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는 대답으로 “천주께 감사합니다”하고 동의를 표하지만 그때마다 나의 양심의 가책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내 부모 형제의 마음을 돌려 놓을수도 없는 주제에 형식적으로만 대답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는 부모 형제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여 기도를 한다.
지금까지 나의 신앙생활 35년을 돌이키며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주님! 당신만이 내 가슴속 깊이 자리하시고 당신만이 나를 지배하소서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또 나를 당신 목적에 따라 창조하셨으니 당신의 뜻에 따라 살게하소서 아멘”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김성복씨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부산시 동래구 사직2동 최민씨의 ‘파도를 넘어’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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