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가게에서 좀 시들한 과일을 샀다. 돈을 내고 사는 건데 이왕이면 왜 모양새 좋은 걸로 사지 않았나 할지 모른다.
과일을 마악 사려는데 한 아주머니가 홍시를 만지작거리고 또 사과를 뒤집어보다가 싱싱하지 않다고 그냥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과일을 손으로 만져 보고 이리저리 흠집이 있나를 살펴본 후에 사가는가 하면 그러고도 안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가게집 주인의 말이다. 하느님도 인간을 이렇게 고르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나를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았다. 나 역시 흠투성이고 멍든 아주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내마음은 선한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것이 시든 과일을 사게 된 이유이다.
한사람 정도가 아니라 하루에 50명이 만지면 과일은 멍들고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말한 주인은 사겠다는 사람 대부분이 제일 좋고 윤나는 과일을 고르기 위해 하나씩 골라 간다고 했다. 또 그 주인은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완전한 과일, 제일 좋은 과일을 쏙 골라가고 자기 다음에 와서 사갈 사람을 생각하는 이들은 아예 없다는 것이다. 누가 바보처럼 손해볼 일을 돈 내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알아서 주세요’하는 사람일수록 성격들이 원만하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할머니 한 분이 과일을 사는데 좋은 과일은 슬쩍 뒤로 빼고 그저 그런 과일을 담으시며 다음 사람을 생각해서 좋은 과일은 양보를 하더란다. 사람이 아직 변변치 않은 주제에 먹는 것만 일등으로 먹기가 미안하다는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그 할머니의 인품이 마음으로 느껴져 왔다.
나는 제사 때가 되면 늘 값이 싸고 좋은 과일을 선물로 받아왔다. 공짜로 선물받은 흠집없고 윤나는 과일을 먹었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좀 시든 과일을 사가지고 왔다. 그런데도 손해봤다는 생각은 전혀 안들고 공연히 알 수 없는 기쁨이 생기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할머니는 시든 과일을 사갈때마다 이런 기쁨을 알았기 때문에 늘상 무엇을 사갈때도 아주 좋은 과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는게 아닐지.
가게 주인은 이런 사람이 오면 좋은 것을 덤으로 더 주고 싶다고 한다. 선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감동되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선함과 착함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손해보는게 아니라 돈 내고 기쁨을 사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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