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주일을 맞아서 편지와 선물을 보내준 구미 형곡본당의 주일학교 친구들과 다른 많은 친구들에게.
너무 답장이 늦은 것 같아서 미안해 그동안 우리 부대에는 훈련도 많았고 겨울 날 준비를 하느라 바람막이 비닐도 치고, 김장도 하고 한다고 답장이 이렇게 늦었단다. 그리고 사실 너희들이 보내준 1백통 가까운 편지에 한꺼번에 답장을 하기란 너무 힘든 것 같아서…. 이렇게 신문이라고 하는 좋은 방법으로 고마운 마음을 나누고 싶은데 용서해 주겠니.
어제는 아침부터 군인아저씨들이 성당에 와서 하루 피정을 하기 위해 난롯가에 모여 앉아있는데 어느 한 아저씨가 “아!”하며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게 아니겠어! 자주 내리는 눈이어서 “왜 그렇게 좋아?”라고 했더니 이 군인아저씨는 “그게 아니라, 눈을 쓸어낼걸 생각하니…” 하고는 씨익 웃어보였단다. 하루 내내 교리 공부도 하고 부대에서 신앙생활을 좀 더 잘할 수 있는 얘기들을 나누다가 부대로 가는 길이 눈에 막힌 아저씨들은 오늘 아침에야 부대로 돌아갔단다. 저녁에 우리 부대 성모회원들이 준비한 삼겹살을 아이들처럼 기뻐하며 먹는 모습, 또 우리가 준비한 작은 선물들을 들고 기뻐하며 돌아가는 아저씨들의 뒷모습이 너무 아쉬워서 너희들이 내게 보내준 위문편지를 나눠주었단다. 비록 ‘군인신부님께’라고 쓴 편지이지만 군인아저씨들을 사랑하는 주일학교 친구들이 보낸 편지이니까 기쁘게 읽으라고 했더니 모두들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행복한 얼굴들이었지. 내가 얼마나 으쓱했는지 몰라.
너희들은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야.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그리고 때로는 여자들도 오게 되는 군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버리면 잘 잊어버리고 말지. 춥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외롭기도 했던 그런 어려움의 순간들 말이다. 왜 그럴까? 그건 아마도 말야 어른들이 힘들었던 순간에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담긴 위문편지들을 못 받아보았던 때문이 아닐까 싶어. 그런데 우리 아저씨들은 너희들의 편지를 받아보았으니 이번 겨울을 아마 따뜻한 마음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뿐이겠니? 군대 생활을 마치고 나간 뒤에도 아마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외로워할 때 따뜻한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아저씨들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여러분이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지 몰라. 사람들은 이제 거리마다 성탄노래들이 울리기 시작하면 백화점을 많이 찾게 될 텐데 백화점에는 모든 것들이 다 있다고 생각할거야.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참으로 소중한 것들은 백화점에서 찾을 수가 없단다.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대개는 소중한 것들이야.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힌 채 목에 감아주시는 어머니의 털실로 짠 목도리나, 조끼, 벙어리장갑들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몰라. 그리고「여러분들께서」보내준 편지들은 또한 정말 따뜻하고 소중한 사랑의 선물이었단다. 어제 저녁 우리 군인아저씨들에게 나눠주기 전엔 얼마나 자주 읽고 또 읽었는지 여러분들의 맑고 귀여운 모습들이 떠올라서 내내 책상에 두고 싶었지만 나누어 주고 나니 더 고마워서 이렇게 한꺼번에 답장을 쓰는 거란다.
여러분의 편지에 아저씨들이 혹 답장을 하지 못하더라도 여러분의 편지를 읽던 아저씨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음을, 그리고 누구보다도 우리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밝은 웃음으로 바라보고 계실 것을 믿어도 좋아. 아무도 ‘그래, 잘났다’하고 말해주지 않아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을 위해 보낸 기도와 편지는 아마 이번 예수님의 성탄절 날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눈꽃으로 피어나겠지. 고맙다 친구들아.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군종교구 이성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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