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이나 진행되어온 UR협상 막바지에서 우리는 쌀마저 개방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지난 80년에 우리는 일개 국제 곡물상에게 우리 정권이 농락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국제시세보다 4배나 비싼 쌀을 들여다 먹은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그들의 손에 생명줄인 쌀을 맡겨놓게 되다니…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우리에게 쌀의 문제는 식량문제 경제문제 이전에 농경문화로 이어진 백의민족의 자존심이다. 우리의식 속에서 쌀은 문화의 중심이고 민족 생존의 원동력이었다. UR협상에서 쌀개방의 결과는 우리민족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하여 온 국민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쌀은 수출을 목적으로 상품농사를 짓는다. 미국의 쌀 농사는 전화농사라고 한다. 경작자가 전화로 씨뿌리는 회사에, 농약치는 회사에, 비료치는 회사에, 수확하는 회사에 전화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또 그들은 쌀을 장기간 유통시키기 위하여 농약을 그만큼 많이 사용한다. 자기들 주식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쌀로 서슴없이 개밥을 만들어 판다. 쌀은 쌀이되 그 가치는 하늘과 땅이다. 그것이 우리쌀과 저들의 쌀이다. 20∼30대의 젊은 여인 둘이서 다정히 손을 잡고 혹은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우리는 참으로 평화스럽고 다정하다고 본다. 그러나 저들은 동성연애자로 혐오스럽게 본다. 우리는 참으로 다정스러워서 보기만 해도 즐겁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문화의 차이이다. 국제화 개방화 시대라고 그 다정한 모습을 서양사람이 혐오스러워 하니 손잡지 말고 팔짱 끼지 말라고 하는 것이 국제화 개방화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국제화 개방화 하는 것은 지킬 것은 지키고 차별화 할 것은 차별화시켜서 문화와 전통 나아가 민족의 얼, 민족의 우수성을 살려서 다른 민족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또 상대의 것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이 시점에도 우리의 쌀이 교역상품으로만 보이고 또 쌀개방이 농민만의 문제로 인식되는 당국자가 있다면 스스로 그 자리를 물러나길 바란다. 진심으로 간곡히 권한다. 다시 한번 당국에 고언하는 바이다. 우리 국민의 열화같은 성원이 있다. UR협상에서 우리나라만큼 국민적 관심과 합의를 가진 나라가 있는가? 당당하고 의연하기 바란다. 쌀협상에서나 또 다른 농산물이나 농산물 이외 많은 부분의 협상을 국가 백년대계를 살피는 시각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해주기 바란다.
이제 우리나라는 강대국의 영원한 극동, 영원한 변방이 아니다. 국제화 개방화 정보화시대에 우리나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기에 따라서 기존 강대국의 굳어진 중심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중심으로써의 역할이 가능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정부는 좀 더 솔직하기 바란다. 투명성과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소신있고 전문성을 갖춘 실무 인력이 일관성과 연속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배치되고, 국민들의 관심과 여론이 굴절됨이 없이 반영되는 제도적 장치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고,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으나 우선 대통령 직속으로 농업발전 위원회를 민간 자문기구로 설치하기 바란다. 또 청와대에 농업 담당 특별보좌관을 두어야 한다. 두 곳 공히 농촌 생산 현장이나 유통 소비문제에 고루 식견을 갖춘 인사라야 한다. 그렇게 해서 민족의 밥줄을 어떻게 놓을 것인지 근본적으로 챙겨 보아야 한다. 국제화 개방화 정보화 그보다 더한 변화의 시대에도 밥은 밥이다. 거기에는 쌀 한 톨에 숨은 우주 억조창생의 협동과 하느님의 섭리를 아는 것과 서울 시민이 먹고 버리는 음식이 대구 시민이 먹을 만큼이라는 현실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 현실을 개선하는 과제도 함께 주어져야 한다. 이것은 쌀을 개방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끝으로 국제화 개방화 시대는 그 나라 국민이나 그 나라 국가권력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개방을 안 했으나 그 국민이 외국상품을 선호한다면 개방되어 있는 것이고, 개방을 했으나 그 국내 시장에서 팔리지 않으면 개방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지난 7년간의 UR협상에서 협상 실무에도 실패했지만 싫든 좋든 집행되는 개방화에 대비하는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또한 더 큰 실패일 수 있다. 농업부문은 말할 것 없고 기업은 기업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준비를 다했다고 보는가?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다. 몇 년 전 미국의 통상 압력을 받은 일본의 ‘나까소네’ 수상이 TV카메라를 대동하고 백화점에 가서 미국상품 몇 가지를 사면서 여유 있게 웃어 보였다. 그것 한 가지가 지금 새롭게 일본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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