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가는 문턱에 서서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면 참으로 무상함이 앞선다. 과연 우리 인생이 살아온 삶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사진기로 낱낱이 촬영해서 그것을 자식들 앞에서 상영해도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만약 우리의 일생을 하느님의 전지하신 신통력 있는 렌즈로 외적이며 내적인 은밀한 모든 것을 촬영한다면, 분명히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어야 하는데, 사실은 우리 자신을 지배하고 빼앗아 가버린 것들-권력 재물 명예 건강 성(性)등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전장면을 장악하고 우리 자신은 엑스트라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의 일대기의 영화 촬영은 무슨 각본에 따라 연출되어야 하며, 어떤 사상과 어떤 가치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인가? 크리스천들은 하느님 말씀의 시나리오(말씀, 그분의 뜻, 계명)에 맞추어져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는 삶이어야 하며,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연출되는 삶일 때, 비로소 크리스천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전지전능한 촬영기는 신통력을 가졌기에 어느 장소나 시간, 마음의 상태, 혼자 있는 방, 비밀요정의 초라한 남정네의 모습에도 어김없이 초점을 맞출 것이다. 또한 보잘것없는 자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베풀고 찾아 주었던 사랑의 손길도 어김없이 촬영될 것이다.
신앙인은 하느님 안에서 희망을 먹고 살아간다. 그 희망의 실은 영혼의 상처를 꿰매주는 은총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전인적인 회개를 하면 죄악으로 점철되어 촬영된 필름을 하느님께서는 싹둑 잘라서 소각해 버리고 폐기처분 해주시는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주님 안에서 회개한 자의 허물을 묻지 않으시고 덮어주고 용서해 줄뿐만 아니라, 영구 폐기처분 시켜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멋있고 감사할 일인가! 이것이야말로 기쁜 소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난번 실명제가 실시되면서 나는 강론시에 “검은 돈이 있어 실명제 하기를 고민하신 분이 있으시면 사회복지 재단에 기부하십시오”하고 알렸는데, 교회복지재단에 실명제 실시기간 헌금된 기부금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어보지 못했다.
연말연시가 되면 으레 불우이웃돕기 캠페인이 일어난다. 전에는 항시 관주도형으로 매스컴이 가세하였다. 요사이 사회적 불안 심리와 경제사정의 어려움으로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제는 민간 주도나 신앙인의 주도로 조용히 그러고 일 년 내내 끊임없는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이제 교회도 대림절과 예수 성탄을 맞이하여 집단 이기심에서 벗어나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야 하겠다.
오 헨리 작품의 「경찰과 찬송가」에 보면, 은근히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크리스천들의 위선을 비유적으로 비꼬는 속뜻을 읽을 수 있다.
주인공 소오피는 모진 주위에도 오갈 데가 없어 공원벤치에서 일요신문 석장으로 아랫도리만 덮고 잤으니 추워서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이 가련한 주인공은 불현듯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구걸하고 자선단체들의 자기만족을 위해 거드름 피우며 도움을 받는 것도 진력이 났다. 차라리 법률이 보호해주는 교도소에 갇히기를 바라는 모순된 논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식당에서 값비싼 음식을 먹고 죄인으로 붙잡히기를 바랐으나, 그의 남루한 행색 때문에 거지 취급을 받아 음식점에는 발도 붙이지 못하였다. 상품도 훔치고 고급 진열장도 깨뜨렸고, 심지어 부녀자를 희롱도 해보았으나 허사였다. 아예 인간취급마저 하지 않아 고발당하고 체포당할 수가 없었다. 기가 막힌 그는 힘없는 발걸음을 정처 없이 옮기는데, 교회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멋진 오르간에 맞춰 찬송가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소오피가 울타리에 올라앉아 깊은 감상에 빠져서 ‘지금부터 나락의 수렁에서 발을 빼자. 한번 사람답게 살고 악한 마음을 버리고 새 출발하자. 아직 때는 늦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있을 때, 아뿔싸! 하필이면 그 찰나 경찰이 순찰하다가 그를 도둑으로 오인하여 체포하고 교도소로 보냈다.
크리스천들이 “기쁘다. 구세주 오셨네…”, “징글벨, 징글벨…” 캐럴을 부르며 요란스럽게 자아도취에 빠져있을 때, 현란한 크리스마스 추리, 외형적 산타클로스의 장식 뒤안길에는 월동을 준비하지 못한 가난한 자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부라리고 있으며, 교도소에서는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울고 있는 ‘소오피’들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공원 벤치에서 오갈 데 없는 추위에 떨고 있는 자를 찾아 나서자. 그리하여 하느님 신통력의 사진기에 죄악의 필름은 폐기처분되고 크리스천다운 일대기가 찍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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