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 간 곳은 전남 고흥군 소록도였다. 소록도는 우리나라 나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었으므로 모든 절차가 좀 복잡하였으나 그곳 수녀님 한 분의 안내로 나환우들이 살고 있는 곳까지 안내를 받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 가기 전부터 환자들의 모습을 상상은 하였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았을 때는 말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일행을 맞아 가톨릭 성가 61번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를 불러주며 우리를 반겨 주었고 우리는 그들의 손대신 팔뚝을 잡고 인사를 하였다. 나는 눈앞이 흐려졌고 남몰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사방을 돌아보니 우리 일행 모두는 나와 한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눈과 코와 손이 없어진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그들의 언행과 표정은 너무도 밝아 보였으며 모든 분들이 정말 평화스럽게 보였다. 나는 평소에 나의 가난함을 탓했으며 많은 불만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 순간만은 “주여 감사합니다”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저절로 나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하느님께 대하여 그만큼 감사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얼마동안 나환우 형제자매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들의 맑은 모습이 나의 가슴속 깊이 와 닿았다. 육신은 비로 환자였지만 그들의 마음 가운데 살아있는 그들의 정신은 그야말로 하느님의 은총을 듬뿍 받고 살아가는 모습들이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삶이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무도 밝고 맑게 살아가는 모습을 본 후 그곳 환자분들이 소위 우리가 보는 병신이 아니고 외모상으로 멀쩡하게 보이는 나 자신이 정신적으로 병들었고 세속영화에 푹 빠져있는 병신임을 마음속으로 부끄럽게 생각했다.
지금도 나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따를 때는 그때 본 그들을 생각하면서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게 힘든 시련을 주신 것이라 생각하며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어떻게 생각하면 행복을 주시지 않고 시련을 주신데 대하여 감사할 수 있겠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좋은 일만 계속 있게 되면 처음 몇 번은 ‘주님 감사합니다’하고 감사기도를 하게 되겠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모든 일들을 잘 처신한 결과로 착각에 빠질 것이며 주님을 찾는 기회가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이 닥칠 때까지 하느님을 잊고 살다보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될 것이고 반면 시련과 고통이 따를 때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느님께 도움을 구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는 시련과 행복이 공존할 때 하느님을 멀리 하지 않게 될 것이며 항상, 감사할 줄 알며 늘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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