춧불을 켜면 마음이 가다듬어진다. 성당에서 초를 사올때는 공연히 부자가 된 기분을 맛본다. 흔히 외국인들은 저녁을 먹을때나 손님을 식사에 초대했을때 영락없이 초를 켜는걸 보았다.
초는 백랍이라는 유충의 분비불을 가열해서 응고한 거라고 사전에는 쓰여있다. 초가 만들어진 과정이 신기한 것이 아니라 초를 통해 불빛이 우리에게 주는 그윽한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사람들은 초를 자주 애용하는게 아닐까. 기도할때나 기도모임에 초를 켜면 거기에 모인 이들의 마음을 일치시켜주고 숙연 해진다. 또 춧불을 켜 놓으면 그 주위의 냄새나 오염된 공기를 흡수하는 기능이 있다고도 한다.
초대교회때 로마의 까따꼼베의 지하무덤에서도 촛불을 밝혔다. 물론 땅굴과 다름없는 깜깜한 지하의 무덤에선 이 춧불의 소중함이나 사물을 밝혀주는 불빛의 의미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어떤 강한 의미가 가슴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초대교회때는 사방천지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 보면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됐을 시절이었다. 촛불처럼 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사람이 살아가는 바른 길을 밝혀주는 빛이 되어주었다. 스스로 자신의 심지를 뜨겁게 태우면 보이지 않는 사물이 보이고 사랑하는 이를 알아 보고 햇볕이 들어오는 지하무덤 입구와 통로를 밝혀주는 등불이었을 것이다.
요즘 선정적인 광고나 물건을 팔기위해 과대광고를 하여 주부들에게 과소비를 조장하거나 환경에 해를 주는 화학세재 광고 또 아이들을 피해망상증으로 몰아넣는 TV앞에 서면 전쟁이 따로 없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순수하고 천사같은 자녀들을 기르는 부모는 바로 사방이 깜깜했던 초대 지하교회의 촛불의 역할처럼 한 자루의 촛불로 뜨겁게 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식에게 올바른 길을 밝혀 줘야만 한다. 어머니의 분신은 뜨겁게 타 녹아 한 자루의 촛불이 되어 가정에 말없는 교훈이 돼야 한다. 그래서 소공동체가 늘 맑게 꺼지지 않고 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잔치에 초대받은 귀한 손님이다. 나라는 한 자루의 촛불을 밝히고 삶이라는 잔치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소공동체의 촛불이 한 자루, 두 자루, 세 자루가 점점 많이 모인다면 우리의 잔치마당에는 어둠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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