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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욱더 혹독한 고문과 체벌을 받으면서도 확고한 신앙심으로 이를 극복하시고 순교까지 하셨다.
이러한 순교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는데 언제부터인지 “천주교는 개신교와 달리 제사를 지낸다 하더라”는 말도 있고, 실제로 제사를 지내는 신자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볼 때에 옛날부터 음식준비는 그 날 모인 이들을 위해서 하고 돌아가신 이를 위해서는 기도(연도)를 바치는 천주교식 제례를 드린 많은 신자들은 당혹감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데 상제례 토착화 연구특별위원회에서 발표한 시안을 보니 도저히 천주교 의식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위패(位牌)가 무엇인가. ‘누구누구신위’라고 적은 나뭇조각 아닌가. 그 위패 앞에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술을 따르며 절을 하고, 숟가락을 밥그릇에 꽂고 또 절하고, 이러한 제사가 어찌 천주교 신자 가정에서 행해질 수 있겠는가.
가령 내가 죽었을 때에 나의 시신 앞에 또는 기일(忌日)날 위패를 만들어 놓고는 그 앞에 온갖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토착화란 무엇인가? 위패를 모시고 삼제를 올리며 숟가락을 밥에 꽂는 식의 유교식 제례를 답습하는 것이 토착화인가? 이야말로 비과학적이요 비위생적이요 비문화적이요 비신앙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전통적인 유교제례에서 위패를 왜 모셨으며 밥에 숟가락을 꽂고 냉수나 숭늉을 왜 드리는지, 그 의미를 우리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제사예식을 만들려 하는지 의문스럽다.
토착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교리나 전통에 어긋나서는 안 될 것이다. 유교전통에 젖어 내려온 우리라고 생각하고 유교의 제사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고 다만 성경구절 몇개를 삽입하고 성호를 긋고 성가를 부르는 것만으로 가톨릭의 제사의식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2백년을 내려오는 동안 거의 토착화된 상제례가 있다. 연도책 「성교예규」에 있는 ‘상장규구’나 ‘상례문답’ 내용 등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으며 연도와 예절 등도 그렇게 하고 있다.
천주교 신자의 상례나 제례는 가톨릭적이라야 한다. 외교인과 세속의 눈치보고 제사상 차리고 하는 것은 단연코 없어야 한다.
천주교 신자의 장례미사나 장례절차 등은 외교인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초상 때에 연도시간이 길어서 다음 문상객이 기다리기가 지루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찬미경을 생략한다든가 지엽적인 수정이나 보완은 필요할 것이다.
아무쪼록 상제례 토착화 연구특별위원회와 전례위원회 그리고 주교회의에 부탁드리오니 한국 가톨릭의 훌륭한 전통이 훼손되지 않고 잘 살려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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