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나 꽃이나 열매가 탄생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리고 짐승들이 새끼를 낳을 때도 탄생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탄생이라는 말은 오직 인간에게만 쓰이는 말이다.
겨우내 기다렸던 매화꽃이 피어났을 때의 기쁨, 암소가 몇 날을 배앓이를 틀다가 겨우 새끼를 낳았을 때의 대견함, 주인의 기쁨이 여기에 있다. 한 생명을 위해 2백80일을 일거일동 조심하고 젖먹는 마지막 남은 힘까지도 기꺼이 바쳐 아들을 낳았을 때 주위에서 지켜 준 식구 등의 기쁨은 이루말 할 수 없거니와 더구나 아기를 낳은 엄마는 기쁨 이상의 신비스러운 감회를 맛볼 것이다.
왜 기뻐할까. 꽃이 피면 왜 기쁠까. 소가 새끼를 낳으면 왜 기쁠까. 기다리던 아기가 탄생했을 때 왜 기쁠까. 그건 사랑의 본능이 아닐까 한다. 삭막한 가지를 뚫고 나온 연약한 꽃잎들을 바라보면 그건 하나의 기적이다. 겉으로는 마른 가지에 생명이 움트고 있었으니 살은 가지임을 우리는 확인하는 기쁨이다. 송아지는 한마디로 튼튼하다. 송아지가 크면 논밭을 갈기에 일손을 덜어 주고 후일에는 팔아 돈이 생기고 또 소가죽까지 이용하니까 주인에게 도움을 준다.
아기가 탄생하면 볼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오고 자라면서 온갖 재롱으로 기쁨을 주기 때문에 키우는 수고를 잊고도 남는다.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도 아들을 보면 기쁘고 시름을 덜어 준다.
이 아들이 없었더라면 험난하고 힘든 세상을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들이 대견할 뿐이다. 온갖 수모도 아들곁에만 있으면 즐겁기만 하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늙은 부모를 돌 볼 것이고 임종까지 지켜 줄 것이기에 아들의 탄생은 그야말로 감사할 일이다. 세상에서 자신을 똑 닮은, 똑 닮은 심성, 똑 닮은 생각을 지닌 분신이 나처럼 인생을 살거라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위안이다.
그런데 이제 하느님을 똑 닮은, 똑 닮은 심성, 하느님을 똑 닮은 생각을 지니신 아기가 나에게 탄생한다.
아들의 탄생이 대를 이어 줄 기쁨이라면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의 대를 내 안에 이어 줄 것이며 임종 이후의 나를 반드시 구원하시기 때문에 가장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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