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는 단순히 교리와 성경 이야기를 가르치는 자리는 아닙니다. 주일학교는 보다 근본적으로 삶을 가르치는 자리여야 합니다. 주일학교가 교리와 성경을 가르치는 자리라고 한다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아주 잘해주는 스님도 가르칠 수 있고, 아이들에게 인기가 제일 좋은 어느 개그맨이 가르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학교는 신앙을 가르치고 그 안에서 삶을 가르치는 자리이기 때문에 바로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가르쳐야 합니다. 아울러 주일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신앙인으로서의 자세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이렇게 오랜 시간 주일학교에서 학생들과 같이 주님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총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은총과 더불어 저를 주일학교 교단에 있게 한 학생이 있기에 잠깐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처음 주일학교 교단에 섰을 때 저는 무언가 학생들에게 주기 위해서 나름대로 지혜도 짜보고 이 책 저책도 넘겨보았습니다. 나름대로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었을 때 저를 깜짝 놀라게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게 했더니 한 학생이 장차 사제가 되는 것이 자기의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로서의 제 고민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 가르침이 그 학생의 성소에 장애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며, 과연 나는 그 학생이 성소를 가꾸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때 주일학교 교사를 그만두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의 선배로 제가 조그만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또 부족한 자신이지만 나를 통해 그 학생이 예수님의 희미한 자투리라도 볼 수 있다면, 아니 이제 와서 솔직한 답변이지만 이 부족한 나를 통해서 그 학생이 올바른 신앙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교사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제가 계속 교사의 자리를 지킨 것이 그 학생의 성소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사제복을 입은 그 학생을 만날 때 주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떻게 보면 주일학교 교사도 하느님의 부르심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게으르면 게으른 대로, 열심하면 열심한대로 쓰일 곳은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모자란 제가 아직 교사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순명하는 마음의 자세만 있다면 모두가 서로 조화될 수 있으며, 이 조화가 바로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마음에 새겨두고 나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당신 모습을 보여주고 부르고 계신 예수님을 안다면 그 교사는 정말로 훌륭한 신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모습을 그때나 지금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치 못하는 제 자신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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