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성탄이 다가오긴 했나보다. 성당과 교회의 외부장식에서보다 상가나 백화점의 치장에서 그리고 흘러나오는 귀에 익은 멜로디에서 그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가게나 백화점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꾸러미들, 소박한 그림이 아니라 이제는 사람의 호기심을 끌도록 만든 카드 모양들, 대형건물들 특히 호텔이나 백화점건물 주위의 나무들에는 은하수 불빛이나 색색의 야광 옷이 입혀져 있다. 그런 다음 이제는 사람들의 마음도 서서히 축제기분에 젖어들 것이다.
분명코 성탄은 이러한 풍속이나 풍습이 판치는 외적인 시계축제가 아닐 텐데. 우리가 진정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성탄축제의 외적인 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성탄의 신비를 꿰뚫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눈길이 안개에 흐려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기 위하여 나자렛 예수 안에서 하느님은 이 세상에 오셨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이 세상을 꾸며야 한다.
“오늘 당신들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성탄 밤의 기쁜 소식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사셨다”라고 성탄축제날의 복음이 선포한다. 그렇지만 그 당시 벌써 복음작가들은 “여관에는 그들이 머물 방이 없었다” “그분은 세상에 오셨지만 그러나 그 고향사람들은 그 분을 맞아주지 않았다”라는 말로 주석을 달았다. 이에 이 주석은 그 당시와 오늘날에도 성탄에 던져지는 중요한 질문이 된다. 곧 “너희 인간들은 태어나신 이 예수님께 머물 곳을 드리고 그를 하느님의 아들로, 구세주로 알며, 더 나아가 그를 맞아들이고 그의 삶을 여러분의 삶으로 만들 준비가 되어있는가?”라는 물음이 된다. 이 질문을 달리 표현하면 너희들은 예수의 말씀과 삶, 그의 탄생과 죽음, 이 세상에 그분의 오심이 우리 삶의 중심으로 만들고 우리 삶의 그 어떤 것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가장 중요한 존재로 모실 준비가 되어있는가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 향한 신앙이 실제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분이 우리 삶의 뿌리이자 목적인가? 하는 물음이 된다.
성탄은 단순히 평화에 대한 희망의 축제나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사랑의 축제만이 아니다. 더욱이 성탄 캐럴이나 성가 ‘고요한 밤’의 가사처럼 낭만적인 분위기에 기분이 젖어드는 때는 더욱 아니다. 성탄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축제이다. 성탄은 우리 모두에게 결정적인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을 믿습니까? 당신의 삶을 그 분의 삶과 그분의 말씀 그리고 그분이 가신 길에 따라 살아가겠습니까?”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자신의 삶에서 예수께 조금의 자리도 만들어 드리지 않고 그 분을 맞아들이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하느님을 모르는 단순한 무신론자들뿐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이즈음 밤을 밝히는 온 나라 전체의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교회와 성당의 성탄 불빛 숫자 반의반만큼이라도 참된 신앙인이 있다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이렇게 각박하진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숫자의 ‘이름만의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교회나 성당을 찾아가지만 삶의 일상은 전혀 다른 판단기준에 따라 보낸다.
복음도, 교회의 가르침도 그들 삶의 척도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서 먼저 자기 이익과 개인주의, 보상주의 또는 무관심이 일상을 지배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을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삶의 중심으로 놓아두도록 초대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와 의지, 우리의 기쁨과 눈물, 우리의 모든 걱정과 희망의 중심에 하느님이 놓이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분은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싶어 하시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이기를 결코 원치 않으신다.
성탄은 우리를 새로운 시작으로 인도하고자 한다. 목동들은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사실을 보자”하고 서로에게 외쳤다. 이제 누가 하느님이 자신의 삶에로 들어오시도록 새롭게 시작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머무심을 체험할 수 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가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부르신다. 삶과 기도에 진지한 숙고와 하느님께 보다 많은 시간을 드리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이웃과 새로이 화해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주기를, 더 나아가 삶을 나누기를 호소하신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여러 다른 목소리로 부르시고 각자의 삶에서 그 목소리를 듣고 당신 뜻에 따라 살기를 초대하신다. 그렇더라도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이라는 근본은 동일하다. 성탄의 신비는 이것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한다. 성탄의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풍성히 내려지기를 간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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