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3기 ‘본당 봉사자 학교’란 이름에 색다른 매력을 느꼈다. 수료과정 2년이 좀 길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본당 신부님의 권유와 봉사자 학교라는 특성과 호기심 때문에 입학을 결정한 것인데 벌써 수료라니 아쉬움과 감격이 교차되어 다가선다.
본당 봉사자 학교는 그동안 매월 첫째 토요일 4시부터 주일 4시까지 만 24시간의 합숙 수련과정이었다. 교직 정년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입학한터라 후반기 1년은 퇴임 후의 몫이 되어서 그만큼 감회도 새롭고 보람도 느꼈다. 교구 내 43개 본당에서 추천된 99명이 함께 수료의 영광을 안게 되어 더욱 흐뭇하고 자랑스럽다.
연수과정 내용은 구·신약성서, 교리, 영성생활, 공의회 문헌, 전례, 한국 교회사, 한국의 신흥종교, 봉사자의 자세, 교회와 평신도의 역할, 자연환경보호,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시청각, 그룹 대화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게 되었고, 자신을 차분히 되돌아보았으며 이웃의 고마움과 친절함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 투철한 신앙심과 함께 꾸준한 덕행이 수반되어야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나와 네가 함께 어울려 살아야 되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남의 처지를 이해하며 살아야 현명한 일이라는 것도 짙게 느꼈다. 희박해진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위해서 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하고 봉사하는 삶이 무엇보다도 요구된다는 것도 절감케 되었다.
교육의 장소도 성남동 교육회관을 중심으로 솔뫼 피정의 집, 강경 나바위 대건 교육관, 배론성지 순교자들의 집, 부강 엠마우스 피정의 집 등에서 실시하여 성지에 대한 재인식과 자연환경의 변화와 농촌의 아름다움에 심취되기도 했다. 1박2일간의 봉사자 학교 교육이 자꾸만 기다려지고 기간도 연장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컸으며 절반 이상이 개근상을 받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본당 봉사자 학교에 대한 열성과 성의를 짐작할 수 있다.
평생을 통해서 배워야 되는 현실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다시없는 축복인 것이다. 더욱이 같은 신앙을 나누며 좀 더 알찬 봉사자가 되기 위한 우리들의 만남이란 주님의 은총 안에서 끈끈한 형제애의 정을 주고받게 마련이다. 서로간의 인사도 갈수록 정다워지고 잔잔하던 얼굴에도 미소와 생기가 솟는다. 비록 적은 봉사라도 먼저 하려는 적극적인 자세에서 정이 일고 사랑이 넘치기에 정말 좋은 배움터요 알뜰한 실천의 장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허술한 나의 신앙생활에 대한 부끄러움이요 죄책감이다.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졌으며 달라지도록 노력하고 있느냐는 뉘우침이다. 실천을 다지려는 나의 의지가 문제이다. 쉽게 무너지고 쉽게 유혹에 빠지고 마는 나약한 나의 존재가 원망스럽고 선행을 뒤로 미루려는 타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다만 주어진 여건에서 작은 봉사부터 시작하고 남에게 피해를 덜 주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봉사자의 자세를 배우며 앞으로의 삶에도 좋은 길잡이가 되었는데 열심히 생활하면서 우선 종교인임을 너무 내세우기보다는 한 가정인으로서 가정에 성실하고, 사회인으로서 이웃을 사랑하고 직장에서 맡은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간혹 잘못된 열심 즉 가정을 소홀히 하면서 교회내의 활동에만 치중하는 것도 올바른 신앙이 아니기에 평신도는 어디서부터 봉사하는 것인가를 일깨워 주셨다.
봉사자는 가정의 안정과 평화가 근본이 되어 학업에 열중하고 직장에서 성실히 살아야 한다. 훌륭한 부모, 좋은 남편과 아내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부모를 학대하거나 자식들을 따뜻이 돌보지 않으면서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방문하여 보살핀다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고 주님의 뜻도 아닌 것이다. 내 가까운 이웃이란 바로 가족인 것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봉사활동이거나 명예와 자신의 이익을 노린 종교적인 생활이란 참다운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나와 우리 교회 공동체의 어제와 오늘의 삶을 돌이켜 보면 흔히 머리로만 믿고 입으로만 외치는 생활이었기에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사랑의 실천과 희생을 꺼리고 손해를 보며 살기를 싫어했던 것이 사실이다.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하고 손과 발이 따르는 믿음이 아니었기에 교회수와 신자수는 자꾸만 늘어가는 추세인데도 인심은 각박해지고 사랑은 메말라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신자가 신자답게 살고 있지 않다는 징표이다. 자신의 십자가조차 회피하면서 모든 잘못이나 빗나간 책임을 내가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풍조가 만연되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봉사자의 자세로 투신하여야 한다.
봉사란 성의를 다해서 섬기려는 겸손한 자세로서 나의 시간과 나의 재능과 나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바치는 보람있는 활동이다. “쪼개서 나누어 먹어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 모두가 좀 더 주는 공부를 하고, 주는 방법을 익히고, 주는 생활을 다져야 한다.
내가 지난 4월부터 여성회관에서 한글을 가르치게 되었고, ‘소년·소녀 가장’돕기 운동과 가톨릭 문우회에서 일을 하게 되어 바쁘게 움직이게 된 것도 주님의 은총에 따른 봉사의 기회로 생각하고 복되게 나누고자 한다. 그동안 본당 봉사자 학교를 위하여 무한한 사랑으로 격려를 해주신 경갑룡(요셉) 주교님, 유흥식(라자로)사목국장 신부님, 각 본당 신부님과 가족과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