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대학 입학시험 날에는 날씨마저 매서운 추위가 몰아 닥쳐 입시추위라는 새로운 기상도 생겨났는데 금년은 다행히도 영상의 기온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어서 많은 부모님들과 시험 감독 선생들마저 한결 마음의 위로가 되었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학력고사감독으로 입시 현장에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비애를 이 짧은 지면에다 어찌 다 쓸 수 있겠는가만,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은 썰렁한 교실에는 핏기 없이 지칠 대로 지쳐 버린 자네들의 얼굴이 내 마음 더 아프게 하였네. 긴장과 초조한 표정으로 답안지 배포를 기다리고 있는 자네들의 눈망울에는 교육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네.
나는 자네들의 답안지에 일일이 확인 도장을 찍으면서 단 한사람도 빠짐없이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소신껏 문제를 풀어 가라는 위로를 잊은 적이 없네. 그럴 때마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자네들의 떨리는 목소리는 내가 시험감독관이 아니라 나도 입시생을 둔 한 아버지로서 가슴이 저며 오는 아픔을 느꼈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현실이라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수밖엔 없네. 오늘날 이러한 우리의 교육 현장은 왜 이렇게 되어 버렸고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 가야 할 것인가는 한 개인의 생각으로만은 가당치도 않고 다만 국가적 차원에서 높은 분들이 이 나라 장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어떤 일보다도 우선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심각한 국민적 관제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많은 정치인들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당리당략에만 매달려서 이렇게 심각해져가는 온 국민의 열병을 뒷전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지금쯤은 시험이란 냉혹한 심판대에서 판결을 받고 백여만명의 학생들과 부모님 형제 친척들을 합치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슬픔과 기쁨의 쌍곡선에서 있을 것을 생각하면 하느님께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시리라 생각하네. 이럴 땐 우리서로가 기쁨을 함께 하면 두 배로 늘어나고 슬픔을 함께 하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되새겨 보세나.
합격을 영광을 안은 자네들에게 지옥 같은 입시관문을 넘어 오늘의 기쁨을 맞이한 자네들에게 우선 두 손을 들어 축하를 보내면서 몇 가지 일러두고 싶은 이야기가 있네.
첫 번째로는 우선 몇 년 동안이나 낮과 밤과 자기를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살아온 한을 풀어야 하네. 그러기 위해서는 밤낮을 가리지 말고 실컷 잠의 뿌리를 캐어 보게나. 긴장의 해소는 잠밖에는 없는 것 같네. 그리고 큰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거든 마음이 맞는 몇몇 친구들과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훨훨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것이 세상 잊는 데는 참 좋을성 싶네. 그렇게 다녀오거든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이나 또는 클래식 음악·영화·연극·독서로서 차분한 교양을 불어 넣게나. 그러면 자네들의 메말랐던 가슴은 촉촉해져 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네. 그리고 그동안 담을 쌓고 살던 친척 어른 형제들을 찾아보고 차분한 입학식을 찾아보고 차분한 입학식을 기다리게나.
그리고 두 번째로는 고등학교와는 전혀 다른 자유로운 대학생활이 시작되는데 우선 수강 신청을 잘 해야 하며, 1학년에 입학하면 우선 교양과목이 많아서 대학기분이 덜 나겠지만 그래도 자네들이 지나온 고등학교와는 비할 수 없을 만큼 큰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네. 그렇지만 학점관리에는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선택과목을 잘 짜 보게나. 학점은 항상 여유 있게 신청하고 특히 철학이나 예술 같은 과목은 반드시 수강하길 바라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요 삶 자체에 대한 공부이며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에 높은 학년으로 올라가더라도 철학이나 미학은 계속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예술은 인간에게 높은 교양과 지성을 불어 넣고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감성적 정서교육이기 때문에 직접 창작은 못하더라도 교양으로도 반드시 접근해볼 필요가 있네. 이러한 예술의 접근에는 미학의 개념 같은 과목이 퍽 재미있으리라 생각하네. 그리고 셋째로는 많은 교수님들과의 만남도 중요하며 또한 좋은 친구들을 폭넓게 사귀면서 보다 높은 이상의 뜻을 세우고 대학의 낭만도 놓치지 말고 학문과 지성을 겸비한 성실한 길을 닦아 가길 바라네.
금년에 실패한 아들딸들에게
지금 자네들의 아픔은 자네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픔이네. 이러한 아픈 상처는 내일의 보다 알찬 열매로 맺어지기 위한 한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게나. 보석 중에도 매우 귀하고 아름다운 진주는 자연히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상처를 입은 조개가 자기치유의 끝없는 노력에 의해서 값지고 영통한 진주가 생긴다는 사실도 잊지 말기 바라네.
사람과 동물이 다른 것은 이성과 감성을 가지고 있음이라고 볼 때 실패와 상처는 부족한 인간을 더욱 여물게 하는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있네. 이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제군들과 같이 실패의 쓴 잔을 마시고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네. 사랑하는 아들딸들이여! 자네 부모님에게는 하나같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존재임도 잊지 말길 바라고 더욱 용기를 내어 이번의 실패가 새로운 출발의 힘찬 계기가 되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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