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네 동네 한가운데는 집을 두 채 이상은 거뜬히 지을 수 있는 빈터가 있습니다. 그 빈터에는 언젠가는 집을 지을 거라고 하는데, 미수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빈터로 있어서 미수또래의 아이들은 빈터가 그들의 놀이터가 된 것입니다.
빈터에서는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줄넘기도 하고 때로는 싸움도 하지요. 그뿐인가요, 어른들은 아침저녁으로 배드민턴도 치는걸요. 그래서 빈터는 누구든지 놀 수 있고 쉴 수 있는 미수네 동네 사람들 공동의 장소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헌데, 이 빈터에 일이 생긴 거예요. 글쎄 빈터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마주보고 사는 털보할아버지와 꽁초할아버지가 빈터가 자기네들 거라고 새끼줄을 빙 둘러 쳐놓고는 한가운데를 다시 새끼줄을 쳐서 빈터를 갈라놓은 거예요.
“뭐라구? 이 빈터가 모두 네 것이라구? 벌 받을 소리 말엇!”
어느 날 털보할아버지가 떠들어대는 소리에 동네 사람들은 날이 밝기도 전에 모두 빈터로 뛰어 나왔답니다.
“벌 받을 소리라니? 등기상에 이렇게 절반은 내 땅이라고 돼있지 않아?”
꽁초할아버지는 털보할아버지 못지않게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두 할아버지가 질러대는 고함소리는 그날 하루 종일 그리고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몇날 며칠을 해뜨기 전부터 해지고도 한참까지 동네는 고함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털보할아버지와 꽁초할아버지는 말뚝을 쾅쾅 박더니 새끼줄로 빈터를 삥 둘러 쳤습니다. 물론 빈터 반은 털보할아버지가 치고 반은 꽁초할아버지가 쳤지요. 그럼 빈터 한 가운데는 누가 갈랐느냐구요? 그거요? 그것도 반은 털보할아버지가, 반은 꽁초할아버지가 갈랐지요. 두 할아버지는 오른쪽과 왼쪽에서 새끼줄을 가지고 와서 한가운데서 새끼줄을 꽁꽁 묶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은 놀이터를 잃었고 아빠 엄마들은 배드민턴을 칠 장소를 잃었어요.
빈터를 잃은 우리들은 학교를 갈 때나 학교에서 올 때나 빈터를 둘러친 새끼들을 손바닥에 꽉 잡고 훑으면서 지나갔습니다. 새끼줄이 손바닥을 간질거리며 지나가는 맛이라니……. 발바닥까지 간질려서 온몸이 짜릿짜릿해 오지요.
이렇게 한 달이 가고 또 한 달이 가고, 어느새 1년이 가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날로는 삼백육십오일이 간 거지요.
“얘, 미수야 말이나 되니? 왜 우리가 두 할아버지의 사소한 다툼 때문에 놀이터를 빼앗겨야 되니?”
“글쎄 말이야 더욱 고약한건 털보할아버지랑 꽁초할아버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니지 하루 종일 잠잘 때만 빼고는 빈터를 마주보고 앉아서 으르렁거리는 거야!”
미수와 규형이는 처음에는 소곤소곤 말하다가 점점 목소리가 커집니다.
“왜 할아버지들 싸움에 우리가 희생돼야 하는 거야!”
“나도 그걸 모르겠어, 뭐 등기상으로 빈터가 두 할아버지 땅인 건 그렇다 치고…”
규형이는 제법 어른스럽게 등기상이 어쩌고 저쩌구까지 들먹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너무 하다니까…”
아이들이 빈터 주변에 모여들어 와글와글합니다.
“근데, 그렇게 사이가 좋던 할아버지가 왜 사이가 나빠진 거야?”
혜정이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못합니다.
“사실 날도 얼마 안남은 할아버지들이 땅 먹기 싸움이라니 고얀지고! 에헴!”
텔레비전에서 본 대로 흉내를 내며 덕구가 헛기침을 크게 하자 아이들이 와르르 웃습니다.
“글쎄 말이야, 얼마 사시지도 못하실 할아버지들. 땅 먹기 싸움이라니, 너무 하십니다. 그건 너무 하셔요!”
규형이가 크게 소리칩니다.
“얘 할아버지가 들어!”
미수가 규형이 입을 손바닥으로 막으려 하자 규형이가 목을 길게 뺍니다.
“왜이래? 들으면 어때? 그럼 할아버지들이 우리보다 사실 수 있어?”
규형이가 큰 눈을 더욱 크게 치켜뜨며 미수에게 묻자,
“그건 그래 하지만…”
미수의 목소리가 기어드는데
“뭐가 어째? 사실 날이 어쨌다구?”
어느새 뛰어 왔는지 털보할아버지가 규형이 뒤에서 턱수염을 부르르 떨며 서계십니다.
“어디 이놈 말해 봐라! 이놈! 조고만 놈이 뭐 사실 날이…”
털보할아버지가 규형이의 멱살을 힘껏 움켜잡습니다.
“할아버지…그…그건….”
규형이가 할아버지 손에 매달려 숨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는데,
“얘, 털보야! 모양이 별로 좋지 않다. 그 손 놔라! 내 생각에도 네놈이나 내놈이 먼저 죽을 것 같다.”
꽁초할아버지가 규형이 목을 움켜쥔 털보할아버지의 팔을 잡습니다.
“뭐라구?”
“안 그러냐? 너랑 나랑은 이미 칠십줄, 이 아이들은 내일의 태양이에요. 우리가 너무 몰골 사나웠다구!”
꽁초할아버지가 털보할아버지에게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뜹니다.
“에헴! 그랬나?”
털보할아버지는 멋쩍은 기침소리를 내며 규형이를 움켜쥐었던 손을 놓습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털보야!”
꽁초할아버지가 털보할아버지의 어깨를 툭 칩니다.
“네놈이 뭘 내가 잘못했다. 어서 새끼줄이나 거둬, 이놈아!”
털보할아버지가 팔뚝을 걷고 나섭니다.
“새끼줄?”
“그래 이놈아! 빈터는 우리 게 아니에요 등기상으로는 우리 건지 모르지만 빈터로 있는 한은…”
할아버지들이 새끼줄을 걷기 시작하자 규형이 미수, 덕구도 따라 새끼줄을 걷습니다.
“야 삼팔선은 내가 치울 거다!”
혜정이가 소리치며 빈터 안으로 뜁니다.
“삼팔선?”
모두의 눈이 둥그레집니다.
“맞아 삼팔선이지? 아니 휴전선인가?”
그러는 사이에 삼팔선처럼 빈터를 가로질러 쳐졌던 새끼줄이 혜정이의 손으로 치워지고 공터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내일부터 아니 오늘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빈터를 가득 메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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