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면 아쉬움이 남아있는 몸짓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둘러 출근준비를 한다.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한 후-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딸애는 이 장면에 공을 들인다. 온 얼굴을 돌아가며 뽀뽀를 한 후에야 놓아주게 마련이니-문을 나서면 찬 공기에 속눈썹 끝에 달려 있던 잠은 멀리멀리 사라지게 된다.
학교에 도착하면 훨씬 많은, 덩치 큰 아이들이 나를 반겨준다. 재잘거리며, 토라지기도 잘하고 함박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죽은 쥐새끼를 출석부 속에 넣어 두어 내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기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학창시절을 되새김질 하곤 한다. 또한 아이들과 함께 설레며 방학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1년이 후딱 저만큼 가있곤 했다. 그리하여 나의 소녀시절은 끝나 버린 게 아니라 아이들을 통해 재현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늘 내가 주는 것 이상의 것을 준다. 아이들의 성장력은 놀라워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이들이 밝은 미소로 다가올 때. 정성이 담긴 아이들의 편지를 읽을 때 나는 행복하다. 사소한 오해로 친구와 사이가 멀어졌다고 엉엉 울며 가슴으로 파고들 때도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나는 행복하다. 이리하여 내 나이 벌써 서른 하고도 여섯인데 정신 연령(?)은 늘 열여섯이다.
나의 행복에 뺄 수 없는 아니 가장 비중 큰 것이 신앙이다. 나의 종교생활이야 겨우 걸음마하는 단계이나 그래도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믿고 행복해 한다.
물론 늘 행복하기만 하랴. 다른 엄마들처럼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겠다는 딸애 말에 “네가 사랑하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엄마도 자랑스런 선생님”이라고 세뇌(?)시키면서 마음 한구석은 아리다. 그저 꿋꿋하고 바르게 자라길 하루에도 몇 번이고 기도한다.
제자들 또한 내게는 종종 시련으로 다가온다. 몇 번씩이고 타일러도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는 아이, 거부의 눈짓을 보이는 아이, 도벽이 있는 아이, 한없이 인기 연예인에게만 마음 쏟는 아이, 친절함을 때론 악용하는 아이 등·
하지만 이런 아이들 때문에 교육은 필요한 것이 아니랴. 누군들 흠 없는 사람이 있을까. 더욱이 아이들의 부정적인 모습의 책임은 어른들, 사회에 더 많이 있음에야.
인생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타성에 빠지지 않고 쉽게 타협해버리지 않으며 늘 깨어 있으려고 노력해왔다. 깨어서 느끼고 생각하면서 어떤 고통도 피하지 않고 싸워 이기려 노력해왔다.
나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까. 특별한 능력이나 재주는 가진 게 없다. 그저 따스한 마음, 깨어있는 의식, 노력하는 자세나 아이들에게 전해 주리라.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 또한 나를 사랑하니 나의 진실은 전달될 것이다.
새해에는 막힌 곳은 뚫리고 얽힌 것은 풀리고 얼어붙었던 것은 녹아버리는 해가 되면 좋겠다. 교육환경을 개선하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함께 노력하던 동료들이 떠오른다. 나보다 아이들을 훨씬 사랑하던 분들이 현장에서 떠나 있다. 아이들을 그리는 마음이 어떨까를 생각하면 가슴에 저려온다. 올해엔 웃으며 함께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여성칼럼」 신년호부터 새 연재
본보는 91년 신년부터 여성칼럼을 신설합니다.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신앙·자녀·교육·부부·가정문제 등 다양하게 쏟아내는 단상들을 삶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본란은 생활의 지혜와 보람을 나눔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한 몫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본보가 새롭게 기획하는 여성칼럼이 독자여러분과 보다 밀접하게 호흡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난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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