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사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옛 말이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적절하게 표현한 말 중의 하나다. 지정 인간은 한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노예인가. 불행하게도 대답은 오직 하나, ‘예스’다. 욕망, 욕심은 인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면서 인간을 그 쇠사슬에 묶어놓은 괘씸한 존재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규정 지어주는 중요한 단어 이기도하다. ▼욕심이 없다면 인간집단은 발전 할 수가 없다. 앞으로 나가려는 인간의 욕망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이라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를 지금만큼 누리며 살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 욕심 때문이라 할 수가 있다. 만일 오늘의 문명세계를 긍정적인 시각으로만 판단한다면 인간은 그 단어들에게 감사를 해야 마땅한 노릇이다. ▼그러나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진리 속에서 살펴보면 그 단어들의 부정적 측면은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가 있다.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것”은 현재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적이다. 내 집이라면 단조가 엉뚱하게도 중형을 넘보는 식으로 급상승 해버렸다. 너도 나도 대형의 아파트를 뒤쫓는 세태 속에서 살다보니 그게 정상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던 시절도 이젠 과거지사다. 우리사회엔 뱁새란 없고 오직 황새들만 활개 치며 살기 때문이다. 황새들만이 우글거리는 사회, 어지 삭막하고 황량하지 않겠는가. 크고 작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잘 살고 못 살고(하루빨리 모두가 진정 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하면서 사는 것이 참다운 인간집단의 모습이라 할 수가 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이야말로 살아볼 가치가 있는 사회다. 살아볼 가치가 있는 사회에서 사는 것처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신나게 살아보기 위해선 예외 없이 필요한 전제조선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다움이다. 분수를 지키는 일이다. 새해에는 알맞은 집에서 강도 걱정 없이 살아보자 새해에는 돈 주고 살 빼는 희극을 연출하지 않도록 적당히 먹는 한해를 만들어 갔으며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