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년 양의해 아침햇살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띄운다.
우리 천주교는 이 땅에 빛을 밝히는 길잡이 역할을 훌륭하게 하고 있다. 가려져있는 뒤안길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외톨이들을 위해 희생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성직자와 수도자들과 공동체를 이루어가며 지상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가슴 뿌듯한 기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모습이 마치 영성 깊은 어린양이 천상을 향해 무엇인가를 기구하는 듯한 그런 형상을 하고 있어 이 땅에는 마음이 선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말한 분도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도원과 성당에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있다는 것을 우린 기억하고 그분들을 위한 우리들의 기도를 바쳐야 할 것이다.
평신도 가운데도 예언자적 소명을 담당하게 해내는 분들도 많다. 이분들을 위해서도 감사의 기도를 선물해야 할 것이다. 목자를 따르는 양들과 같이 성직자와 수도자를 따르며 아무도 해내지 못하는 어려운 일들을 해나가고 있는 천주교 형제자매들도 별같이 많다. 이번 성탄과 연말연시에도 그분들의 수고하는 현장이 소개되기도 했다.
제대 앞에 나가 감실을 향해 기도하면서 하느님 앞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보자.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생각과 말과 행위를 천주교인답게 했나를 고백해보자.
지난시대 불의와 부정이 만연하고 기본권이 유보되고 정치가 수렁에 빠져 암울한 상황으로 치달아 앞이 잘 안보이던 때를 우린 기억하고 있다. 그 무렵 대통령과 국회의원ㆍ장관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계각층의 지도급 인사들에 대한 종교별 분류를 한 기사가 보도된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언론보도를 보고 ‘아 이분도 천주교신자였구나’하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낙엽이 지던 만추의 가을이었다. 수도원에서 성직자들과 수도자 평신도들이 함께 피정을 한 적이 있다. 저녁순서가 끝나고 친교의 시간이 됐다. 서로 인사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랑 이런저런 얘기로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성직자한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제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좀 안되긴 했지만 그 사람은 신자가 아닌 편이 오히려 훨씬 나올 뻔 했어요”하는 말씀이었다. 고개를 끄떡끄떡하는 분들이 많았다. 한줄기 빛이 돼 모범을 보여야할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람들을 박해하는 일에 향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니 섭섭해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이다. 비굴하지 않고 의롭게만 산사람들 손들라고 하면 자신 있게 손 들사람 몇이나 될까도 생각해본다. 지나친 현실참여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지도자급에 있는 천주교신자가 해도 너무하니까 대화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느님과 국민 두려운 줄 모르고 무리한 욕망을 채우려는 이들을 도와 괴변논리를 펴고 양심을 팔고 국민들에게 겁을 주고 기본권을 제한하는 일에 앞장섰던 천주교인이 있었다면 고백성사를 받고 보속을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 나라 정치사를 역류시키고 물줄기를 거꾸로 돌린 결과 정치제로지대를 만드는데 어느 천주교신자가 큰 몫을 했다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같은 공동체의 한사람으로서 미워하는 뜻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글이다.
하느님 말씀에 보면 한사람이 죄악을 저지르면 누군가가 그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하셨다. 겨레를 사랑하고 그들에게서 행복과 기쁨이 싹트게 하고 자유와 민주역량이 자라나게 도와주어야 할일도 우리가 할일이다. 방향감각을 잃고 툭하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세월을 보내는 이들의 행위도 역겹다. 이 세상을 맑은 눈으로 봐야한다. 매사를 사시로 보고 부정적이고 반항과 불만투성이의 문제아적인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것은 사회질서의 파괴만을 가져올 뿐 백해무익이라는 것도 명심해야할 것이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그런 부류가 분명히 있다는 것도 알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또 생각해보자. 신자가 늘어나는 것 물론 좋다. 그러나 참신자가 몇이나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주일미사에 잘 나오고 교무금 잘 내고 의무축일 잘 지켜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이 시점에서 하느님의 아들·딸답게 정의롭고 모범되이 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신자수는 적지만 보석 같은 진짜 천주교인들이 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엔도우 슈샤쿠 같은 분이다. 우리나라에도 성바오로 서원에서 나온 「침묵」의 작가로 잘 알려져있다. 천황이 일제 36년 동안 지은 죄를 ‘통석의염’이란 어정쩡한 말로 얼버무렸지만 그분은 천황을 비롯해 일본국민이 지은 대죄를 한국국민 앞에 정직하게 사죄해야 된다고 논설과 강연을 통해 담당하게 주장했다. 하느님의 아름답다. 또 묵상해보자. 천주교는 교만하고 배타적인면이 있다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겸손이 부족해서 그렇다. 가톨릭이란 말엔 보편적이고 수수하다는 뜻이 내포돼있다. 귀담아 들어야할 말들이다. 총회장 사목위원을 하고 레지오에 나가고 꾸르실료와 엠이(ME)교육 그리고 기사교육을 받고 피정을 다녀오면 다 되는 게 아니다. 늘 성서와 함께하고 기도가 생활화되고 희생과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겠다. 불의가 세상을 덮을 때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용기도 길러야겠다.
진실되지 못하고 부족함이 너무 많다는 것 솔직하게 인정하자. 작은 성인이 되자. 한 생애를 인류구원 사업을 위해 모두 내놓은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위해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살 줄이는 여유도 가져야겠다. 갈라진 형제들을 포용할 줄도 알고 다른 신앙을 믿는 이웃들 그리고 신앙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아야겠다.
이 땅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나라들이 나타났다 가는 사라지고 하는 명멸을 거듭했다. 동방의 작은 나라 ‘코리아’가 이렇게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은 그 시대마다 빛을 심는 사람들, 소금과 누룩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적정수 만큼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지상에 잠시 머무르다 가는 것이다. 우리 한 생애 하느님 자녀답게 살면서 이 겨레와 조국산하를 밝혀주는 한줄기 빛이 되자. 슬픔과 고통의 미음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아름다운 인생을 살자고 한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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