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해 하는 가운데 얼마쯤 지났을까. 문쪽에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파란 죄수복과 번호표는 그대로였지만 예전 같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제한된 짧은 시간에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 소파에 앉아서 서로 손을 잡고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윤수야!”
어머니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손이 많이 야위었고 곳곳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는 그동안의 모든 고생이 아로 새겨져 있었으며 나는 눈짓을 주었지만 바보스럽게도 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는 줄 알았는데도 어머니와 나는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너무도 기구한 운명 앞에서 눈물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어머니, 고생 많으셨죠?”
“고생은 무슨 고생, 너희들이 더 힘들었을 텐데”
어머니는 항상, 언제나 그러하셨다. 어머니의 걱정보다는 우리들의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이제 걱정 마세요. 곧 나오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렇게 되어야 할텐데…”
“누나랑 리나랑 형욱이도 모두 잘 있어요”
누나와 동생들 이야기를 꺼내자 어머니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를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준비했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머니, 그만 진정하세요.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그게 어디예요”
“그래”
애써 눈물을 참으시는 어머니께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렸다. 그다지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다소 분위기는 밝아졌다.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하는 도중 시종 느낄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신심이 굉장히 두터워지셨다는 것이다.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하고 계시며 또 성경책도 자주 읽고 계신다고 하셨다.
“윤수야 예전에 네가 수도원에 간다고 했을때 엄마가 반대했었잖아? 그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어. 물론 네가 야속했던 적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네가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기특하구나. 이 엄마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줘. 나도 기도할게. 그리고 이다음에 꼭 훌륭한 수사신부님 되어야해. 이젠 다른 생각 말고 오로지 수도생활, 학교생활에만 전념하는 거야 알았지?”
돌아오는 차안에서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우리가족 모두는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잘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처참할 만치 풍지 박살나고 깨어지고 했지만 실제로는 서로 하느님 안에서 똘똘 뭉쳐 더욱 단단해지고 강인해졌던 것이다. 이젠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묵주알을 땅에 내던지며 다시는 기도하지 않겠다고 했던 나의 간사함이 못 견디게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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