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일치주간이 시작됐다. 1991년도 일치주간은 금요일인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간 이어지게 된다. 일치주간은 그 단어가 의미하고 있는 그대로 모든 그리스도교가 하나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는 주간이라 할 수가 있다. 갈라진 교회, 갈라진 형제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교회의 일치 노력은 올해로 꼭 1백년의 역사를 기록하게 됐다.
1990년 영국 성공회소속의 신자와 가톨릭교회의 신자가 친구가 됨으로써 시작된 일치에의 첫 걸음은 1908년 일치주간의 공식적인 설정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세계교회의 역사로 볼 때 교회 일치를 향한 노력은 벌써 1백년의 세월이 흘러간 셈이다. 적지 않은 세월동안 교회가 펼쳐온 노력에 따라 그리스도교들은 많은 부분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교회의 일치운동이 정점을 이루는 제2차 바티깐공의회가 끝난 직후 한국에서도 교회일치운동이 일어났다. 1968년의 일이다. 가톨릭과 개신교, 동방교회, 성공회가 함께 일치기도회를 매년 개최하면서 불붙었던 한국의 일치운동은 7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식고 말았다. 10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막이 내린 셈이다. 최근 한 연구소가 실시한 우리나라 종교지도자들의 의식에 대한 조사연구 결과는 수명이 짧은 한국의 일치운동의 현주소를 읽게 해준다.
신부 목사 승려 등 4백49명의 일선 사목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보고서는 각종파간의 무관심과 거부감이 그리스도교 일치추구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물론 이 자료는 불교계가 포함되어 있어 엄격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일치문제를 살펴보기에는 무리가 따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리스도교 사이에 팽배하고 있는 상호간의 불신과 거부감을 확실한 자료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치를 위하여 학문적 접근에 한계가 따른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종교음악을 통한 접근도 좋고 사회복지 활동을 함께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사회가 앓고 있는 중병, 생명경시 풍조에 대한 대책운동을 공동으로 펼 수도 있다.
최근 가톨릭교회가 전개하고 있는 ‘내탓이오’ 운동을 비롯 일부 개신교단의 바르게살기운동 등은 가톨릭과 개신교회가 합쳤을 때보다 큰 성과를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가톨릭과 개신교도의 숫자를 합산한 수치로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가톨릭의 3백만, 개신교의 7백만을 합산하면 그 수는 1천만에 달한다. 1천만이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살아나간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천국이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조차 하나가 되지못하면서 온 세상이 하나가 되기를 기원하는 것은 우스운 노릇이다. 갈라지고 또 갈라진 형제들이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하나가 되어 태평성대를 누리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다.
이 세상은 아직도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고 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선택해야만 하는 어두운 시대다. 그리스도교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이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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