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최귀동 할아버지가 하느님 품으로 가신지 1주기가 되는 날. 눈이 와서 꽁꽁 얼어붙은 길을 주님께 맡기고 꽃동네로 향했다.
그 곳에 도착하니 예상했던 대로 길이 미끄러워 멀리에서 오신 분들은 1백여명 정도였고 꽃동네 가족들이 성당을 가득 채워 추모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11시 30분에 오신부님과 청주교구의 여러 신부님들이 함께 미사를 집전하시고 12시 30분에 최귀동 할아버지의 묘 앞에 세워진 동상과 비석이 제막되었다.
비석은 노태우 대통령 내외분이 보낸 성금으로 만들어졌는데 가로2m 서로 1m가 되는 대리석위에, 앞에는 최귀동 할아버지의 생애가, 뒤에는 할아버지의 영전에 드리는 시가 가지런히 담겨져 있었다. 동상은 높이가 2.5m인데 작년 장례날 우리 회원들이 모은 정성으로 건립된 것이다. 조용히 성스러운 행사에 참여하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할아버지의 생애를 돌이켜 보았다. 설거지 하는 집만 찾아다니며 남는 밥을 얻어다가 먹여주고 죽으면 장례해 주는 일을 40년이나 했던 할아버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할아버지의 사랑의 삶은 변함이 없었다.
76년 9월 무극본당 오웅진 신부님과의 만남은 하늘의 뜻이었던가! 최귀동 할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실천과 오신부님과의 귀한 만남이 낳은 사랑의 기적이 오늘의 꽃동네가 되어 가난한 영혼을 수백명 구원시키고도 1천9백여명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86년에는 할아버지의 숭고한 사랑을 보전하고자 한국천주교회에서는 가톨릭대상(사랑부문)을 수여 했는데 상금으로 받은 1백만원을 죽어가는 분들을 위한 집지어 달라고 하여 노인요양원을 짓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안구를 기증하여 27세 된 젊은 청년이 빛을 찾기도 했다.
작은 예수로서 숭고한 삶을 사신 할아버지의 1주기를 맞아 새록새록 그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치닫는 이기주의로 끝없는 탐욕의 노예가 된 듯한 현 우리 사회에 그분은 참사랑의 표본이 되어 온 누리에 드러났다. 벙거지를 눌러쓰고 망태기를 메고 깡통을 든 최귀동 할아버지의 동상은 매년 꽃동네를 찾는 수십만의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치고 말없이 사랑을 외칠 것이다. 꽃동네 회원으로서의 작은 정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돌아오는 발걸음은 혹한의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가볍기만 했다.
91년 새해에는 우리 국민 모두가 나보다는 이웃을 생각하는 선한 삶을 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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