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이웃 자매님들로 이루어진 독서 모임의 리더(leader)이셨던 안나 자매님께서 책 한권을 건네주셨다. 조용하지만 힘 있는 어조로 ‘순교자 윤유일(바오로)·정은 평전’이라는 생소한 제목이었다. 나로서는 처음 대하는 이름이었고 대충 책장을 넘겨보니 논문시의 구성에다 여러 가지 역사적 자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어 읽어나가는데 다소 노력을 요하는 책이거니, 하며 그대로 책장 속에 보관했었다.
그러나 그 후, 본격적으로 차근차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대했을 때 나는 이 책의 한 장 한 장을 경이로움과 감탄으로 넘기게 되었다. 물론 메모까지 해가면서.
윤유일은 사제가 없었던, 일면불구(一面不具)의 한국교회에 국경지방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모셔다 명실공히 한국교회를 완전한 교회로 만드는데 주동적 역할을 한 분이시다.
그러나 그 당시 천주교박해로 순교하면서, 대죄인의 이름으로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이후 국내에는 아무런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으나 당시 북경 교구장이었던 구베아 주교가 사천 교구장이었던 마르땡 주교에게 보낸 편지가 당시 런던에 있던 외방선교회 본부에서 불어, 포르투갈어, 이태리어로 번역되어 서방세계에서는 일찍부터 널리 읽히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었으며 이 채에서 이 구베아 주교의 편지를 통해 조선 교회의 창설과 발전, 박해와 순교자들에 관한 내용이 부분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편지 내용 중, 특히 윤유일의 세례받을 때의 모습을 보고 중국인들과 유럽 참석자들 모두다 눈물을 가눌 수 없었다고 한 부분과 순교 장면에서, 함께 순교한 최인길(마티아)와 지황(삽바)과 함께 ‘아무런 주저함이나 연약함 없이 신앙을 고백하고 갖은 형벌에도 오직 예수 마리아 이외는 아무런 다른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라는 내용에서 백여년 전의 그 상황을 상세하게, 또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의 첫머리에는 한국 천주교회가 자생하게 된 학문적 배경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즉 서경(書經) 시경(詩經) 중용(中庸)대학(大學)공자 등에 대한 사상을 설명함으로써 원시유학(原始儒學)인 수사학(洙泗學)으로부터 절대자 창조주를 찾을 수 있었음을 이해시키고 있는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됨에 무척 흥미로웠다.
또한 그 당시 북경행 사신들의 모습과 그 고생스러움의 노정을 홍대용, 김창업, 이압 등이 쓴 연행록의 부분적 소개로 눈에 보이듯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으며 우리 사신들의 눈에 비친 북경의 희귀한 문물들에 대한 묘사가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특히 성당 내부의 모습이라든지 십자가 예수상, 성모상, 천사들의 형상 등을 처음 대했던 그들의 느낌, 처음으로 원근법과 명암법에 의해 그려진 성화를 보고 모두가 하나같이 실물인양 착각하여 경이로움에 기록한 내용, 각종 과학기기, 악기에 대한 귀중한 기록도 실로 많이 소개되어 그 당시 천주교 도입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순교자, 윤유일과 그 밖의 순교자들의 아름답고 장한 순교와 굳건한 신앙은 물론이며, 그 시대의 교회 내부 상황과 사회 현실들을, 각종의 사료 제시를 통해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음에 가슴 뿌듯해하며 여려 독자들께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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