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불쌍한 젊은 여인의 사건을 수임한 적이 있었다.
사건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그 여인은 결혼하여 남편과 같이 시골 장터에서 열심히 장사를 하여 장터집도 사게 되고 여아를 출산하여 어려운 살림살이를 하면서도 행복하게 살 형편이 되었는데 갑자기 남편과 사별하게 됐다.
정말 갑자기 당한 일이라 젖먹이 어린 것을 데리고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한데 남편과의 혼인신고는 물론 여아의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형편이라서 상중에(초상 중) 친정과 시집식구 간에 여러 가지의 의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의논한 결과 장터집에서 살게 하고 집과 약간의 살림살이를 주겠다는 시어머니와 시숙의 이름의 각서를 받았다.
그와 같은 각서까지 받게 된 것은 장터집이 남편명의로 되어 있어,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사실상의 처인 그 여자 앞으로 상속이 될 수가 없기에 후일을 위하여 각서를 작성하게 된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록 그 약속대로 하여주지 아니할 뿐 아니라 쫓겨 나오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소송을 하게 되고 그 소송을 위임받아 재판을 하게 되었다.
소송에서 상대방은 그 각서가 친정식구들이 초상 중에 소란과 협박으로 할 수 없이 작성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목격한 사람까지도 나오게 되고, 이쪽에서는 순순히 작성된 것이라 하며 쓰게 된 상황의 증인도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 소송의 결과는 그 여인이 패소가 되어 나로서는 그 여인이 불쌍하고 돈도 없는 형편이라 내 자비로 항소를 하였으나 결국은 또 패하게 되었다.
판사로서는 그 각서가 협박하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믿고 그와같이 판결을 한 것이다. 나로서는 판사의 심증에 잘못된 채증법 등의 하자가 없는 이상 할 말이 없고 보니 불쌍한 그 여인에게 무엇이라고 할 말도 없고 참으로 안타깝기만 했다.
그 여인은 어린아이를 데리고서는 식모살이도 할 수 없고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걱정하면서 자기 팔자를 원망하고 울기만 하고서 나에게는 오히려 그간의 소송에 많은 수고만 하게 하여 죄송하다면서 인사까지 하는 판에 더욱 나로서는 난감했다.
무식한 편인 그 여인은 자식 없는 서러움과 자기 자신의 팔자를 원망하면서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무슨 위로의 말도 할수 없는 답답한 사정에 이르러, 이런 소송을 수임하게 된 나 자신이 한심한 마음이 들게 되었고 다만 울면서 어린아이를 업고 나가는 그 불쌍한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앞으로의 고생을 부디 이겨가면서 희망을 버리지 말고 행복하기를 충심으로 기도를 바쳤을 뿐이었다.
이러한 앞뒤 모든 사정을 살펴 볼 때 그 여인에게는 너무나 억울한 판결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이 났다.
판사가 자유심증으로 믿게 된 증거에 의한 판결에 법률상 하등의 하자가 없는 이상 어떻게 할 도리도 없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종말이 되고 만 사건이었다.
나는 그 사건에 대해 그 후 많은 생각을 하였고 변호사로서의 책임감을 절실히 느껴 혼자서 성경의 여러 구절을 읽으면서 답답한 나의 심정을 달래고 있었으나 과연 그 여자는 무엇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까 하는 생각으로 잠 못 이루기도 했다.
나 역시 판사로 있을 때 세례를 받아 사물을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며 올바른 평가를 한다고 하면서도 뭔가 공허함을 느끼면서 여러 다른 각도에서 사안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여왔다.
그런데 법조계에서 흔히 하는 말로 “법은 살고 사람은 죽는다”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이 처한 상황 안에서 그 사안의 합리적인 해결보다 법조문에 의한 규정과 법조항으로 판결하다 보니 이처럼 억울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범죄 및 사고 장소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취급 관서관할권 때문에 사건의 해결이 지연되다보면 그 규칙 및 법은 살게 되고 문제해결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수가 많은 것을 일반 시민들이 어렵지 않게 체험해 왔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보면서 필자는 신약성서의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은 평화롭고 점잖고 도량이 넓고 자비와 선한 행위로 가득 차 있으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위선이 없습니다”(야고보 3,17)는 구절을 묵상하게 됐다.
과연 인간의 판단은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거의 40년에 이르는 법조계 생활을 통해 절실히 느끼는 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판단은 완전히 올바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은 그분의 삶과 죽음이 증명해 준다.
결국 하느님은 완전한 법조인, 가장 올바른 재판관이라 우리 법조인들의 귀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날이 절감하고 있다.
법조계의 일, 즉 시시비비를 가리고 판단하며, 불의보다 정의 편에서 일하려고 애쓰다보니 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체험적으로 또 이성적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지금, 나는 하느님이 모든 판단, 정의의 거울이라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분야에서만 이와 같이 항복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나의 직업과 전혀 무관하다 하지 아니할 교육, 의료, 무역, 사업 등 여타 모든 분야에서도 그 분이 판단기준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바다.
고희가 넘은 이 나이에, 그 분의 총체적인 ‘진실’ ‘판단력’ ‘사랑’ 앞에 무릎 꿇으면서, 그 분에 대해 총체적으로 항복한, 곧 목숨까지 내놓은 순교자들이 가장 올바르게 하느님을 섬겼다는 판단을 아니할 수 없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인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 결국 목숨까지 바치며 모든 분야의 거울을 만세에 알린 이들이 순교자들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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