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우리 가족에게 상당히 뜻깊은 날들이었다. 모든 사람이 항상 기다리는 삶속에 있듯이 우리 가족도 아빠와 아이들이 떨어져 살므로 겨울방학을 기다렸다. 원자력 본부에 남편이 몸담고 있어서 방학이 되자 가족이 모이게 된 것이다.
늘 말로만 듣던 호남지방을 난생 처음 두 딸과 함께 여행했다. 전남 영광의 법성포에 처음 발을 디디는 순간 참으로 평화롭고 조용한 고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조그마한 포구였다. 바로 그 유명한 영광굴비가 나오는 곳이다.
온 동네가 줄줄이 엮어진 굴비로 가득 찼다. 딸애들은 신기해서 굴비를 바라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또 하나는 백제 무왕시절 인도의 마라난타승이 배를 타고 법성포에 도착해서 영광의 불갑면에 불갑사라는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출항을 기다리는 낡고 조그마한 어선들, 나는 갈매기들, 바닷물이 빠져나간 짙은 잿빛 뻘들 한구석엔 망가진 뱃조각들이 널려있다. 생선내음이 바람결 따라 콧등에 다가왔다.
낭만적인 겨울의 바닷가를 바라보고 섰노라니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며 비로소 딱딱하고 복잡한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음을 새삼 느꼈다.
어느 사이 카메라렌즈는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지니고 다니는 카메라 가방 때문에 짐이 늘어서 식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찰칵찰칵 누르는 셔터소리에 익숙해져서인지 짜증내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는 가족들이 고맙기만 하다. 여러 종류의 렌즈를 함께 넣어야 하므로 가방이 상당히 무거워서 돌아가며 가방을 들어주곤 한다. 우리는 차를 타고 달리는 중에도 내 눈에 좋은 장면이 들어오면 언제든지 차를 세운다. 가족들의 따스한 미소와 행동이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기에 오늘까지 작품활동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
주님은 내게 특별한 은총을 내려주셨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냥 스쳐버릴 수도 있는 모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모습을 나는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볼 수 있고 카메라 렌즈에 담을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신 것이다.
온 몸에 주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고 항상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정열이 넘치고 작품을 만들고 싶은 의욕이 가득하다. 주님이 나를 도구로 쓰시어 그분의 원하심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은 사진작가이기 전에 나는 두 딸의 어머니이고 한 남자의 아내라는 점이다. 많은 기자들이 나를 만나러 올 때도 남편 뒷그늘에 서고 싶어서 숨으려 했다. 그만큼 내겐 남편이 소중하고 그의 아내로서의 위치가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다. 말없이 뒤에서 지켜주는 남편과 어머니를 이해해주는 두 딸에게 미안해서 더 열심히 살며 노력한다.
우리 가족은 다음번 만남을 위하여 벌써부터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처럼 순수한 마음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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