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초 이야기다. 형광등이 아직 보편화되지 못했던 그때 희미한 전구 하나는 우리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소중한 기구였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아이들은 방만 나서면 전등을 끄기에 급급했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생활필수품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절약은 그 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 그 자체였다. 얼마 전 국내 모 방송국이 방영한바 있는 ‘그때를 아십니까’라는 프로는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많았던 그 시대의 아팠던 기억을 감회 속에 되 살려 주기도 했다. ▼몽당연필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구멍 난 고무신, 운동화를 신는 것이 문제가 될 리가 없었다. 팔꿈치와 무릎부분은 의례 기워입는 것이 옷인 줄만 알았다. 양말은 또 어떠했던가. 신발을 벗으면 발냄새에 앞서 머리를 내미는 것은 발가락들 이었다. 흔하지는 않았던 치약은 묻히는 흉내만 내는 것으로만 족했으며 어렵사리 모아둔 신문지들은 조각조각 잘려져 화장실에 매달리는 게 상례였다. 세숫대야의 물이 넘쳐흐르는 법도 없었고 잠깐 실수로 수돗물을 세게 틀모양이면 엄마들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리는 것은 당연했다. ▼어느 날 부터인가. 소비가 미덕이라는 속삭임이 우리사회에 파고들었다. 전등 끄기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알뜰하게 모여졌던 조각비누들이 수돗가에 내버려졌다. 넘쳐흐르는 수돗물을 잠그는 사람도 사라졌다. 티슈라고 불리는 부드러운 휴지가 지천으로 널리고 아이들은 먹다 남은 과자조각들을 아까 운줄 모르고 버렸다. 값을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사치품을 경쟁적으로 사들이는 엄마, 한 좌석에서 수십만원대의 술값을 호기 있게 날리는 아빠들은 아이들의 소비모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 다시 전등을 끄라고 한다. 버리는 일도 자제하라고 한다. 물론 걸프전쟁이 몰고 온 이변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제 정신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철이 들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하나뿐인 지구, 그 속에서도 손바닥만한 우리의 국토를 감안한다면 자원의 절약은 상식중의 상식이다. 걸프전쟁이라는 악몽 속에 존재의 위협마저 느껴야하는 이 시점, 우리가 취해야하는 이득은 절약과검소다. 이는 걸프전쟁의 막내림과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이어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