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원길(그레고리오) 신부님의 명복을 삼가 비오며, 저희들이 조 신부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야기를 꺼내면 “요즘은 인생 70도 청춘이라는데 내 비록 한쪽 폐만 갖고 있지만 그리고 이것도 일하라고 하느님이 남겨주신건데 70정도는 살 거야”하시면서 두툼한 두 손으로 저희들 손을 잡아주시던 일이 여전한데 52세의 짧은 나이로 천상에 드시다니 고인에게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지나치게 돈독하신 탓(?) 으로 돌리기는 아연할 따름입니다.
강론 때는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띠시며 훌륭하고 적절하게 또 알아듣기 쉽게 유머러스한 비유를 들어 저희들을 흡족하게 하시고 성당 안에 늘 웃음꽃이 피도록 하신 수없이 많은 명(?) 강론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중에서 지금도 가끔 제가 적당한 곳에 써먹고 있는 성 말띠노의 거지이야기를 여기에 다시 적습니다.
아마 천주교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비신자들의 심정을 비유로 드신 것 같았습니다. 말띠노 성인의 유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운반하는 길가에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고 그중 많은 병자들이 말끔히 치유되는 은총의 기적이 일어나는 광경을 보고 있던 다리를 저는 두 거지 중 한사람이 말하기를 “이보게 빨리 멀리 가세. 만약 우리가 성인의 은혜를 입어 치유가 되어봐 성한 사람이 될텐데 그러면 어떻게 구걸을 하겠나”하면서 멀리 도망을 가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저희들은 웃을 수도 웃지 않을 수도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듯 멋있는 강론은 더 못듣게 되었어도 훈훈한 향기는 저희들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비록 육신은 떠나셨어도 생전의 자상하시고 인하시던 모습은 장난꾸러기라며 꾸지람 듣던 아들 녀석 프란치스코와 귀여움을 받던 딸 로사의 첫영성체 사진 속에서 뵈올 수 있으며 어느 해 성탄 때에 굵직한 만년필로 쓰신듯한 크리스마스카드 속에서 살아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미사가 끝나면서 언제나 문 앞에서 성경을 왼팔로 잡아끼시고는 성물 강복과 신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마중하시던 따뜻한 정은 하느님께로 향한 신심으로 승화하여 우리 모두에게 고이남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부님, 사제양성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하시는 등 하고 싶으신 많은 일들을 남겨두고 떠나실 때 얼마나 안타까우셨습니까? 또한 미사 때 아멘하면서 절을 해댄다고 야단을 하시면서 그 순간 십자고상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화살기도라도 하라면서 미사예절을 엄히 가르치시던 석수동 신자들은 얼마나 보고 싶으셨겠습니까?
하오나 천상으로 부르심을 받으신 것도 하느님의 섭리이고 보면 신부님인들 감히 거역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부디 육신이 계시던 세상일일랑 모두 잊으시고 그리던 하느님 품에서 천상의 복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도 CNN 방송을 들으셔서 알고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신부님께서 떠나신 이틀 후에 중동에서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의 생명은 물론 아프리카에서 굶주리다 못해 죽어가는 어린이 들을 몇 백 년 먹이고도 남을 돈이 헤아릴 수 없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시작도 끝도 없는 종말론을 미혹한 인간들이 들먹이며 법석이오니 부디 이들의 불장난이 하루속히 종식되도록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께 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월17일 신부님께서 남겨두신 육신이 계신 미리내를 가오니 분주하시지 않으시면 내려오셔서 좋은 말씀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사랑하는 하느님 혹 잘못이 있으셨으면 저희에게로 넘겨주시고 부디 조 그레고리오 신부님의 영혼을 당신 품에 안아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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