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멜 수녀원의 미사에 참여하고 돌아보는 길, 아직도 하늘에는 새벽달이 걸려있다. 신선한 아침공기를 뚫고 날아오르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길가의 작은 풀꽃들, 가슴속에 보듬고 있는 눈물 같은 은혜로움, 이것은 바로 완벽한 평화이며 또 완전한 기쁨이기도 하다.
내가 가르멜 수녀원의 미사에 참여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소박한 제대와 높이 서있는 나무 십자가와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언제나 서서 기도하는 마리아상, 그리고 아직도 끓어 앉는 마룻바닥 등, 이런 고전적인 분위기가 마음을 끌기 때문이다. 더욱 좋은 것은 벽 저쪽에서 바치는 수녀님들의 성무일도의 기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의 소리마저 절제하며 곱고 청아한 목소리로 봉헌되는 그기도 소리는 우리의 정신을 참으로 아름답고 높은 영혼의 세계로 이끌어 마침내 하늘 끝에 가서 닿는 어떤 일치의 기쁨을 안겨준다. 나는 이 기쁨을 탐내며 또 그것을 은밀히 간직하기 위해 이 수녀원 미사에 오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어떤 충일한 감동에 휩싸여 걸어가면서 “수녀님들은 그 깊은 봉쇄수도원 안에서 무엇을 안타까이 기도하고 계실까”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들려오던 비행기의 폭음소리, 갑자기 나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그만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아득한 옛날, 여학교 시절에 겪었던 6.25전쟁의 공포가 다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살길을 찾아 달아나고 있는 피난민들 위로 내려앉던 비행기의 위력, 불타는 집들, 사람들의 울부짖음 등 그때의 악몽은 지금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며 낮게 뜨는 비행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 두근거림의 증세가 나타나곤 한다. 오늘 더욱 두려움에 휩싸임은 요사이 연일 TV에서 보도되는 중동전쟁의 소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을 죽이는 무기들이 곡예를 하듯 하늘에 솟아오르고 인간이 만든 흔적들이 순식간에 파괴된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로운 지혜들이 하느님이 창조한 생명들을 파괴하는 그 두려운 행위에 가담한다.
6·25전쟁을 치르던 그 시설, 우리는 신부님이 없는 텅 빈 성당을 바라보며 이제는 고해성사며 미사를 봉헌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그 얼마나 전율했던가.
우리가 누리던 삶의 질서는 무너지고 이 세상 어느 곳에도 평화와 기쁨이 없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저녁 어머니가 맏딸인 나에게 속삭이던 말 “이제 우리는 치명(순교)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엄숙한 의미 앞에서 공포에 떨며 그만 울어버렸었다.
아직 꽃피우지 못한 우리의 나이가 억울하여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을 한없이 저주하였고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어른들의 무려함이 밉기만 했다.
지금, 지구 저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공할 전쟁,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악의 세력들, 그리고 선한 것에 대한 반란들, 참으로 기도해야할 때가 지금임을 느낀다.
우리의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께서 만드신 보기 좋은 것과 그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진정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완고한 고집과 그릇된 판단의 오류를 깨우치도록 기도해야 할 때임을 안다.
언제나 서서 기도하고 계시는 성모님, 봉쇄 수도원의 높은 담 안에서 안타까이 기도하고 있는 수녀님들, 이 기도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들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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