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사람의 기도를 생각치도 않고 두 딸들이 가톨릭의 성실한 신자이기 때문에 그 애들로부터 기도를 받고 싶었으나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은 낮 12시와 오후 6시에 각각 10분간 두 차례에 걸쳐 환자 한사람 당 한명의 보호자만이 면회가 허락되며 시간도 엄격하여 아내만 출입이 가능하여 딸들의 기도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수술 후 5일부터는 통증이 좀 가라앉아서 견딜만했다. 중환자실에서 만 7일을 보내고서 11월 23일 일반병실로 옮겨지고 그제야 다른 가족들도 면회가 되어 만나볼 수가 있었다. 아내의 말은 2차수술은 일반외과의 박정수 선생이 담당하여 1월 28일경에 실시한다는 것이다. 나는 1차수술 때 너무나 고통이 심하여 2차 수술을 다시 받는다는 생각만으로 죽을 것 같았다. 오후 7시경 막내딸 아가다가 회사에서 퇴근하고 병실로 들어왔다. 나는 말을 못하니까 종이에 “막내 베로니카야 네 언니하고 나를 위하여 기도를 바쳐주기 바란다”고 써주니까 막내딸은 깜짝 반가워하면서 “아버지! 아버지만 승낙하시면 내일 제가 신부님을 모시고 오겠어요. 신부님이 오셔서 대세를 주시고 기도를 바쳐주시면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하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신자도 아닌데 안양에서 여기까지 오시겠느냐?”하고 글로 써서 주니까 아버지만 승낙하시면 틀림없이 모시고 오겠다는 것이다.
1988년 11월 24일
나는 막내딸이 신부님을 모시고 오기를 위하여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기도를 받기 위하여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후 5시경 막내딸로부터 오늘은 신부님의 일정이 바빠서 못 오시고 내일 모시고 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1988년 11월 25일
아침 8시경 일반외과의 박정수 선생이 회진을 오셔서 2차수술은 자기가 맡는다고 하면서 수술하는 부위가 민감한 곳이어서 수술이 어려운 것은 틀림없으나 지금은 의술이 많이 발달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오히려 더 불안했다. 그 후 나는 하루 종일 불안한 마음으로 막내딸 아가다가 신부님을 모시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7시경 막 내딸이 신부님을 모시고 병실로 들어오는데 신부님의 첫인상이 아주 신선했다. 나이는 37~8세정도인데 머리를 짧게 깎은 용모가 단정하였으며 까만 신부복에 하얀 칼라가 아준 인상적이었다. 나는 ‘저 신부님 참으로 신선한 분이시구나’하고 느꼈다. 신부님은 나에게 본명을 스테파노라고 지어주시고 묻는 말에 동의하면 머리를 끄덕하여라하라고 하신다. 신부님은 사도신경의 내용을 요약해서 물으셨다. 내가 머리를 끄덕여 답하니 이마에 물을 찍어 대세를 주시고 간단한 기도를 해주시고 가셨다. 나는 신부님의 기도가 너무나 짧아서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말을 못하니 기도를 좀 길게 바쳐달라고 부탁도 못하고 말았다. 막내딸이 입원실 문밖에서 신부님 배웅인사를 하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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