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프랑스로 떠나기 전의 우리나라와 2년 후의 그 모습을 비교해 볼 때 비낙관적으로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외국에서 쉽게 들을 수 있고, 마치 한국의 대명사처럼 소개되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갖가지 범죄, 사건들 때문에 ‘시끄럽고 어두운 나라’로 변화된 인상을 받는다. 자연스럽게 맺어진 인연, 그 좋은 명함을 견고하게 지키지 못하고 깨어버린 듯해 못내 아쉬움이 크기도 하다.
기대가 없어 보이는 현시점에서 난 불어의 불규칙동사 ‘Etre(존재하다)와 Avoir(소유하다)’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며 잠시나마 잃어버렸던 희망을 회복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마치 이 두 동사의 대립 ‘존재’와 ‘소유’와의 갈등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소유하는 것과 관련하여 아무것도 없이 그저 존재하기만 한다면, 남으로부터 바보취급을 당하거나 자기 스스로 자기비하를 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가지지 않으면 괜스레 불안해지고 보이지 않는 공격자와 대항하여 수비의 자세를 취해야만 할 것 같고 늘 긴장감이 도사려지는데서 안절부절못해 한다.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는 것에 대해 동경하고 애착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지나칠 경우에는 항상 문제가 되고 가짐으로 해서 결국 빼앗기게 되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그렇다고 가지는 것이 다 나쁘다는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가질 것과 가지지 말 것, 그리고 그 분량을 조절할 줄 아는 지혜를 배우자는 것이다. 가령 좋은 친구를 많이 가진다거나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따스한 눈빛을 느낄 수 있는 존귀한 마음을 가진다거나 동트는 새벽의 신선함을 만져볼 수 있는 정성어린 마음을 가진다거나 모든 만유위에 최고봉의 지고한 마음을 이끌 수 있는 믿음을 가진다면 이런 소유야 많을수록, 클수록 사회에 보탬이 된다. 그러나 물질 예찬주의에 벌써 익숙해버린 우리의 졸렬한 마음은 어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 가치를 둘 여유가 있겠는가?
좋은 옷을 가져야 되고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소유해야 되며 따지고 보면 신발역할에 지나지 않는 자동차마저도 그것이 마치 인격의 기준이라도 되는 듯 새것과 중형으로 간직해야 하며 좋은 물건을 다 가지고 있더라도 무엇이 부족한지 많은 돈을 가져야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집착이 바로 우리사회를 어둡게 변화시키는 장본인이 아니었나 하고 혼자 견해를 붙여본다.
소유해야만 하는 집착의 이유가 결국은 어디엔가 마음을 흘려버리고 방심한 틈을 타 침투해 들어오는 우리의 한 허점이라는 것을 실로 깨닫기가 어렵기 때문인가 보다. 우리가 가지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가짐을 당하는 그 대상물들이 우리인간을 위해 존재해 주도록 재치있게 그것을 요리하는 방법을 터득해 보았으면 한다.
‘소유’의 마음을 ‘존재’로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Etre와 Avoir의 선택적 갈림길에서, 그것이 비록 어리석은 선택이 될지라도 한번쯤은 Etre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자는 것이다. 즉 Etre는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고, Avoir는 마음이 채워지는 것이라는 현실적 차원의 이해를 넘어서 Etre는 채워질 것이고, Avoir는 비워질 것이라는 미래지향적인 의미에 희망을 두었으면 한다. 그것은 Etre가 바로 우리사회를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숨은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기대해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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