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아내가 “막내야! 신부님이 안양까지 가시려면 날씨도 춥고 한데 차 타시는 곳까지 배웅하고 오지 그러니” 하니까 막내의 말이 “안양에서 오신분이 아니시고 세브란스 병원 앞 연희동 성당의 신부님이신데 못나오게 하셔서 그냥 들어 왔어요”한다.
안양 신부님은 감기로 고생도 하시고 또 일정이 바쁘셔서 연희동성당 신부님에게 부탁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 자기 교회 신도가 아니니까 기도를 짧게 해주고 가는 모양이구나’는 물론이고 평신도의 기도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고 개신교에서 하는 감정이 넘치는 자유기도만 생각 하였던 것이다. 막내딸 아가다는 제 호주머니에서 1단짜리 묵주를 꺼내 나의 손에 쥐어주고 돌아갔다. 나는 그때부터 다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다고 생각됐고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전등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이죄인은 지난 37년간 암흑의 권세와 악마의 지배하에서 그들의 노예로서 살면서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고 교만 방자하게도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아집과 독선으로 뭉쳐서 저 혼자 잘난 체 하는 대죄를 짓고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죄인을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대세를 받게 하시고 죄를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주여! 간청하오니 이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이 고통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11월 28일 오전 7시 30분경 간호사가 와서 수술복으로 갈아입히고 운반용 침대에 태워서 수술실로 옮겨갔다. 1차 수술 때 어찌나 고통이 심했던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어 죄를 사하시고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수술은 8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마취에서 깨어난 것은 1차 수술 때와 같이 1인용 중환자실에서였다. 1차 때와 같이 양손이 침대에 묶여 있었으며 온몸에는 컴퓨터장치에 연결된 수많은 바늘과 튜브가 꽂혀 있었는데 1차 때 양쪽 갈비뼈 사이에 박혀있던 고무호스가 이번에는 목 양쪽에 박혀있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1차수술 때는 호흡이 편하였으나 지금은 얕은 호흡은 할 수 있으나 심호흡은 할 수가 없었다. 의사들은 심호흡을 하라고 하나 도저히 안 되었다. 그리고 어디가 아픈지 구분이 안 되게 아프며 기력이 아주 없었다. 다만 목 속이 개운한 것 같았다.
종양을 제거해서 그런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 확실치 않았다. 눈에 힘이 얼마나 없는지 병실 밖 복도벽에 걸려있는 벽시계의 시침과 분침의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생과 사의 중간점에서 투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틀이 흐른 어느 날 호흡이 꽉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눈을 떠보니 내가 태어나서 30세 때까지 살았던 고향집 안방에 누워있는 것이었다.
방안에는 맑은 물이 벽 중간까지 고여있고 나는 물속에 누워있어서 그 물 때문에 숨을 못 쉬는 것이었다. 방문을 열어서 방을 나가고 싶었으나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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