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박정훈)는 2월 24일, 지난해 11월 7일부터 공모해온 ‘내 탓이오’ 문예작품에 대한 당선작 및 가작을 발표했다. 본보는 이번에 발표된 당선작 2편과 가작 4편중 수필부문 당선작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뭣 하러 들어와? 아예 나가서 살지!”
외출했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 허겁지겁 찬거리를 사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향해 남편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너무 뜻밖인 남편의 행동에 영문을 몰라 눈만 둥그렇게 뜬 채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데 또 하나의 화살이 사정없이 날아와 꽂혔다.
“그래, 자식이고 남편이고 다 소용이 없겠지? 하긴 자기 하고 싶은 것만 다 하고 다니면 남편이야 죽든 살든 자식들이야 도둑놈이 되든 거지가 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 좋아 이제부턴 정말 간섭 안 할 테니 어디 마음대로 한번 해봐”
순간적으로 난 옆에서 겁에 잔뜩 질려 떨고 있는 아들아이의 모습을 보았고 이 아이가 무슨 일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지만 애써 모른척 하고 마루에 올라서면서 찬거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서슬 퍼런 남편의 화가 가라않도록 구슬리고 나서 도대체 왜 그러는지 영문이라도 알자고 다그쳤다.
그러자 나의 기세에 조금 누그러진 남편이 담배를 찾아 물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날 노려봤다.
“내가 처음부터 당신에게 말했지?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과 자식이 있고난 다음이라고”하고 시작한 남편의 말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잠을 자다가(그날 남편은 야근이었다) 인기척이 있어서 깨어 보니까 아이가 호주머니에 무엇인가를 숨기고 들어오면서 유난히 눈치를 살피기에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물어보니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도 당황해 하는 눈치가 역력하더란다.
그래서 더욱 이상하여 벌떡 일어나서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로봇이 들어있는 2백원짜리 과자통이 나왔기에 예감이 이상하더란다.
그래도 최대한의 자제력을 동원하여 어디에서 난 것이냐고 부드럽게 물으니까 친구가 사줬다고 하더란다.
순간 전에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 “거짓말 마라. 어떤 친구가 자꾸 이런 것을 사 줬겠니? 너 이거 훔쳤지?”하고 다그치니까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정말 슈퍼에서 훔쳤다면서 엄마에게는 말하지 말라며 다시 안 그러겠다고 빌더란다.
순간 하늘이 노랗게 무너져내림을 느끼며 무조건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나를 기가 찬 듯 노려보던 남편은, 모든 잘못은 엄마에게 있으니 아이를 때리기에 앞서 자신부터 반성하라며 폭발 할 것만 같은 나의 무분별한 감정에 대고 일침을 가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는 이미 공포에 질려 뼈만 앙상히 남은 몸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잘못했다고 두 손을 싹싹 빌었다.
그 모습이 더욱 기가 막히고 그런 만큼 분노를 솟구치게 했지만 숨을 몰아쉬면서 애써 감정을 잠재웠다.
“이 아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냐? 어떻게 말해야 그것이 진정 나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게 할 수 있나?”
너무도 뜻밖의 사실 앞에 서게 된 철부지 엄마인 나는 아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가장 올바른 방법인지 현명한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서 우선 아이의 옷을 모두 벗기고 기다란 보자기로 두 손을 묶어서 내리지 못하게 장롱 위에다 매달았다.
그리고는 물었다.
물건을 훔치면 순경 아저씨가 잡아가고 커서도 나쁜 사람이 되고 감옥에 갇혀서 살게 되는데 그것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고.
그러자 아이는 알고 있다면서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순간적으로 불덩어리 하나가 목구멍 위로 솟구쳤지만 애써 잠재우고 나서 그럼 왜 그런 나쁜 짓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울먹이면서 대답했다.
“엄마는 누나만 좋아하고 나는 싫어해. 그리고 자꾸 밖에만 나가고 맛있는 것도 안사주고 돈도 안주고 건준이랑 다른 아이들은 모두 로봇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나만 없단 말이야. 엄마는 로봇 사달라고 하면 맨날 안 사 주고. 나도 로봇 갖고 싶단 말이야. 엄마 미워. 나는 죽고 싶어”
아이의 너무 뜻밖의 말에 너무도 당황한 나는 눈물이 핑 돌면서 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우리 아이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이제 여섯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소외감 때문에 물건을 훔치고 죽음을 생각하기까지 엄마인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그래놓고도 엄마라고 아이의 잘못을 따져 벌을 주고 나무랄 자격이 과연 남아 있는가 하는 죄책감에 찢어지는 가슴을 수습할 길이 없었다.
정말 난 우리 아이들에 대해 얼마만큼이나 알고 있는가?
밥 해주고 옷 빨아주고 맛있는 것만 사 준다고 해서 엄마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 하지는 않았는가?
볼일 보러 갈 때마다 엄마 따라 가는 것보다 혼자 놀기를 고집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다 자라서 철이 든 것으로 착각하고 만족한 웃음을 띠곤 했지.
그날 아이의 두 손을 묶어놓고 나도 아이 따라 같이 울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몇 번의 다짐을 받고 또 받았지만 마음이 결코 편할 수는 없었다.
또한 그런 어수선함 속에서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잠도 자지 못한 채 빨개진 눈으로 허둥지둥 안전화를 신고 야근 출근을 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그날따라 그렇게 안쓰럽고 쓸쓸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밤을 꼬박 새운 적이 더러 있었는데 그날은 하루 종일 의식이 몽롱하고 종일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었는데, 그런 사람의 생태계마저 파괴시키는 교대근무를 남편은 10여년이 되도록 해 오면서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었던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건 모두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일 것이고 엄마인 내가 아이들을 책임지고 올바르게 자라도록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해 주리라 믿고 자신이 말은 일을 묵묵히 해 왔던 것이리라.
그런 남편에게 난 무엇을 해주었는가?
날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하는 생활 속에서, 불어나는 저축의 금액 보다는 언제나 생활비 때문에 쩔쩔 매야만 하는 눈앞의 생활고에 염증을 내면서 애교스런 미소마저 한번 건넬 줄 모르는 빵점짜리 아내로 살아 왔지 않은가?
아이들도 잠들고 남편도 출근하고 없는 텅 빈 방 안에서 나 홀로 거울 앞에 앉아 지난 몇 년간을 되돌아보며 반성을 했다.
정말 모두가 내 탓이었다.
아이가 죽고 싶어하는 이유도, 물건을 훔치는 것도 그리고 남편이 언제나 축 처진 어깨로 현관문을 들어서고 나가는 것도 모두가 못난 엄마와 아내를 둔 탓이었다.
무어 그리도 내 꿈 하나가 소중해서 가정을 내팽개치며 까지 돌아다녔더란 말인가?
결혼해서까지 버리지 못한 문학에의 열망 때문에 난 언제나 허덕였고,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그동안 틈틈이 써온 글로 문집이라도 한 권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을 갖고 동분서주하고 뛰어다니는 동안 우리 가정의 행복은 서서히 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우리 네 식구가 오붓하게 모여 앉아 다정스레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어 본적이 언제였던가?
밥상 차려 주기가 무섭게 나는 밖으로 나갔고 해거름이 이슥해서야 집 안으로 찾아드는 엄마와 아내에게, 빵이나 사발면으로 대충 점심을 때운 가족들은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나 자신의 작은 꿈 하나가 내 가정의 행복, 내 아이들의 장래보다 더 중요하였더란 말이가.
설익은 열매하나 따기 위해 미숙한 나만의 나무 위엔 넘치도록 비료를 주면서 정말로 알차게 가꾸고 기름진 영양분을 뿌려 주어야 할 내 가정의 향기로운 열매 하나는 빛을 잃고 시들어 가는데도 모르고 자만에만 차 있었던 나 자신이 너무도 한심스러웠다.
풍요로운 가을 날, 집집마다 함박웃음으로 충실한 열매를 거둬들이고 있는데 유독 나만 시들어가는 열매 하나를 붙들고 통곡 해야만 하는 이유를 뼈저리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봄에 씨를 뿌려 놓았지만 여름내 땀 흘리며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었다.
난 껍질을 깨는 아픔으로 작가에 대한 내 꿈을 과감하게 버리고 지금으로선 다만 아이들 앞에 공부하는 엄마의 상으로만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굳게 결심을 했다.
가을에 낙엽이 모두 떨어져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에게도 봄이 오면 새 잎이 솟아나듯이, 아이들이 좀 더 성장한 후에 그때 내 꿈을 향해 정열을 쏟아도 늦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잠자는 아이를 내려다보니 내려감은 기다란 속눈썹 위에 이슬방울이 아롱져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코를 훌쩍이는 모습이 몹시도 안쓰러워 꼬옥 가슴에 껴안으니 아이는 잠결에서도 엄마품을 비집고 들어오며 가느다란 팔로 목을 휘감았다.
“그래 봉태야, 엄마는 너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가 있어. 비록 잎이 모두 떨어지고 없는 수많은 가을을 넘기고, 엄마에게 다시는 봄이 오지 않는다 해도 너와 누나만 올바르게 자라준다면 엄마에겐 그것이 또 다른 봄일 수가 있어”
아이의 따뜻한 체온을 가슴 깊숙이 서서히 느끼는 동안 나의 눈에선 두 방울의 눈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은 지난날 나의 어리석은 꿈에 대한 후회의 눈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엄마의 도리를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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