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해인 새해가 시작되면서 나에겐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특별히 변화된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막내가 올해 대학을 들어가게 되자 이젠 아이들의 잠 깨우기나 새벽도시락을 싸야하는 일거리에서 한결 자유로워졌기에 새로이 맞는 하루를 거룩하신 주님의 성체와 더불어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의 작고 아담한 성당은 새벽미사가 없기에 버스로 두 정류장 거리의 옆동네 성당으로 가야하는데 선천적으로 잠이 많고 게으른 나를 새해 들어 매일의 성찬에 불러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드릴 따름이다.
새벽길을 가면서 가끔씩 바라다 보이는 수많은 별들의 아름다움에서 새삼스레 하느님 창조의 신비를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매섭고 추운 겨울날씨에, 하얗게 내린 눈을 많은 사람들이 다니기 전에 길 옆으로 쓸어내고 계시던 분들의 모습에서 여태껏 안일하게만 살아온 나의 일상이 부끄럽기만 했다.
미사 중에 매일 조금씩 달리 읽혀지고 있는 본기도와 복음 및 봉헌송의 말씀들은 마치 하느님께서 그 분의 무한하신 보물창고에서 그 날 몫의 보물을 사제의 음성을 빌어 우리 영혼에게 내리시는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성찬의 전례를 통해 조건 없으신 성체를 선물로 받게되는 기쁨이라니….
아직도 미사의 신비를 제대로 깨닫지는 못하지만 매일의 성체는 분명 세상에 의해 때묻고 깊이 오염된 내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 내리는 해독제가 되어 주시는 것 같고 또 병든 내 영혼을 치유시키는 영약이 되어 주시는 것도 같다.
일찍이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배나 수레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뜻만으로 갈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나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은총들은 금전이나 권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소망만으로 살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결코 평탄치만은 않은 우리 삶의 여정에서 평화와 위로의 원천이 되시는 주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성체임을 일깨워 주고자 하심이 아니었을까?!
이젠 세상의 어떤 명예나 영화로움보다는 주님의 거룩하신 성체와 더불어 함께 하는 은총의 삶을 살고픈 것이 나의 진정한 소망이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나라는 바로 너희가운데 있다.(루카 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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