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차 수술이후 부터 지금까지 말을 못하는 벙어리로 지내고 있으면서도 치료가 끝나면 말을 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투병생활을 했으나 이제는 여생을 벙어리로 살아야 한다하니 갑자기 가슴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솟았다. 이런 때 어떻게 하여야 좋을지 모르겠다. ‘오! 주여! 이 죄인 어찌 하오리까?’ 나는 여생을 벙어리로 살아야 하나이까? 내가 너무 낙심하고 있으니까 아내가 하는 말이 “여보! 당신 수술하기 전에 의사선생이 생명을 건지기도 어렵다고 했으며 만약 식도에 암세포가 침범했으면 목옆에 구멍을 뚫어 그곳으로 유동식 음식물을 주입받고 여생을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다행이에요”했다. 당신은 말만 못했지 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글도 쓰고 두 손 두 발이 성하니 하느님께 감사하라는 것이었다. 우리 이웃에 사는 청년으로 3년 전에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서 온몸이 마비되어 앉지도 못하고 누워서 지내면서 대소변도 못 가리는 그 사람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에 비하면 당신은 57세 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이제 다만 말만 못했지 다른 기능은 이상이 없으니 하느님께 감사하라는 것이었다.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전능하신 천주여! 이죄인 죄가 많아 여생을 벙어리로 살게 되었나이다. 주께서 내리시는 벌을 감수 하겠나이다’ 나는 생애를 통하여 지은 죄를 하나하나 반성하면서 천주께 용서를 빌었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잠든 시간을 택하여 병실 밖 복도의 조용한 곳에 휠체어를 타고 가서 묵주를 손에 쥐고 간절히 기도를 바쳤다.
1988년 12월 23일
아침 8시경 회전시 박정수 선생은 크리스마스날이 수술 후 만4주가 되는 날이니까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12월 26일은 수술에 대한 준비를 하고 27일 기도폐쇄 수술을 한다고 했다. 이미 각오하고 있었으나 수술이 3일 앞으로 다가서고 보니 착잡한 심정 이었다. ‘주여! 이 죄인의 여생을 벙어리로 사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이 뜻 감수하겠나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벙어리로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의구심이 작용하고 있었다.
오후 8시경 막내딸 아가다와 아가다가 소속된 레지오 단원 5명이 문병 와서 나를 위하여 기도를 바쳐 주었다. 아가다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도서와 5단짜리 묵주를 주고 가면서 앞으로 며칠간은 성탄절 행사로 바빠서 병원에 못 오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항상 보아도 청순하고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막내딸은 다른 자식들보다도 더욱 사랑스럽고 애절한 그리움이 풍기는 자식이다. 막내는 어려서부터 한 번도 부모의 뜻을 어긴 적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막내로 인하여 걱정해 본적이 없었다. 막내딸 아가다는 우리 집에서 맨 처음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 하였고 언니 베로니카를 개종시켰으며 이번에는 죽음에서 목숨을 구하도록 신부님을 모셔 와서 내가 대세를 받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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