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만에 총성이 멎은 지 십 수 일이 지났다. 무수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고 위협하던 걸프전쟁의 종식은 일단 전세계의 공포와 불안을 잠재우게 만들었다. 걸프전쟁을 통해 우리는 결코 전쟁이라는 것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나 걸프전쟁은 뼈아픈 교훈이라는 말로 마무리 짓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결과를 인간에게 남겨주었다.
최첨단 과학무기는 전쟁을 쉽사리 종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지만 인류자체는 물론 자연과 자원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파괴되고 또 파괴되고 말았다. 아직도 불길에 휩싸여 있는 전쟁지역의 유전들은 아껴 써도 1세기를 쓰지 못할 빈약한 석유자원의 고갈을 앞당겨버렸다. 걸프연안의 오염된 바다가 제 생명을 찾기 위해서는 수십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우려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단언적으로 말한다면 전쟁은 인간이 스스로를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주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멸망의 지름길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극단적인 진단도 있다. 전쟁이라는 과정 없이도 세계의 자원은 고갈을 향해 전진하고 있고 인간은 어쩌면 자연을 파괴하며 매일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아끼고 또 아껴도 머지않은 장래에 고갈되고 말 자원, 그 자원의 인위적 파괴는 바로 인간이 스스로의 무덤을 일찌감치 파놓은 꼴이 된다는 것이다. 전쟁이 남겨놓은 최악의 상처는 인간상호 간에 극도로 팽배한 불신과 미움이다. 전쟁 당사국들은 물론 관련국 모두가 겪고 있는 이 반목과 적대감은 어쩌면 또다른 전쟁을 잉태하는데 필요한 씨앗이 라는 불안도 가능케 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걸프전은 승자와 패자사이에 확실한 경계선을 그으며 막을 내렸지만 우리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 것이다. 진정 승자는 누구이며 패자는 누구란 말인가. 전쟁이 남긴 엄청난 상흔앞에 우리 인간은 모두 패자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피점령지의 황폐함, 점령국이었다는 이라크의 내전상태, 이 모든 현실 앞에 인간인 우리가 선택해야할 몫은 전쟁을 미워하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걸프전 종식으로 우리는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지만 세계 곳곳에는 아직도 휴화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불씨들이 산재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동의 재 개편문제가 그렇고 오래 묵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문제, 그리고 소련 내 각 공화국들의 움직임과 이에 대한 소련의 강경일변도의 대응도 심상치가 않다. 우리의 이작은 땅덩어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같은 어두움에 우리자신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에 의해 전쟁이 저질러진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걸프전쟁을 통해 값비싸게 얻은 교훈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모든 신앙인들의 신앙회복도 중요한 몫을 차지해야만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