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렌즈로 세상보기]‘가짜 뉴스’ 식별을 위한 노력-전 경향신문 편집인 김지영 교수에게 듣는다
진실이 뭐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짜 뉴스 문제점 언급하며 경각심 가질 것 강조”
예전 ‘문맹 교육’처럼 이젠 정보 수용력 높이는 ‘미디어 교육’이 필요
탈진실 시대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정보 수용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탓에 영국 옥스퍼드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로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를 선정하기까지 했다.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이나 감정적 호소가 여론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에 사실을 의도적으로 조작해 사람들을 속이는 가짜 뉴스는 더욱 횡행하고 있다. 탈진실 시대에 우리 사회와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까. 전 경향신문 편집인 김지영(이냐시오) 동양대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 대담: 박지순 취재1팀장
● 일시: 2019년 1월 17일 오후 1시30분
● 장소: 서울 명동 우리사랑나눔센터
전 경향신문 편집인 김지영 동양대 교수가 1월 17일 본지 새 기획 ‘올바른 렌즈로 세상보기’ 대담 중 ‘가짜 뉴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지순 취재1팀장(이하 박 팀장): ‘가짜 뉴스’는 한국사회에서 이미 커다란 문제로 부각된 지 오래입니다. 가짜 뉴스에 대한 개념도 이미 어느 정도 정리돼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짜 뉴스’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김지영 교수(이하 김 교수): 2017년 2월 한국언론학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가짜 뉴스 개념과 대응방안’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그때 가짜 뉴스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 가짜 뉴스의 정의에 대해 논의가 많지만, 학계나 언론계에서는 우선 이 정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박 팀장: 가짜 뉴스는 오보나 루머 등과 헷갈리기도 합니다.
▲김 교수: 맞습니다. 쉽게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짜 뉴스가 오보나 루머, 유언비어 등과 분명히 다른 점은 있습니다. 바로 구체적인 팩트(Fact·사실)를 조작해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왜·어떻게 했다는 보도문장의 형태를 완전히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보는 본의 아니게 기자들이 잘못 쓴 경우이지만, 가짜 뉴스는 ‘의도적으로’ 잘못 쓰는 겁니다.
-박 팀장: 가짜 뉴스가 어제 오늘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 교수: 가짜 뉴스는 인류의 역사와 같이 이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치·경제적인 이유들로 가짜 뉴스는 오래 전부터 만들어져 왔습니다. 백제의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만들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던 노래 ‘서동요’도 일종의 가짜 뉴스였습니다. 히틀러를 포함해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나 잡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 가짜 뉴스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박 팀장: 과거에 비해 오늘날의 가짜 뉴스는 어떻게 변화했습니까.
▲김 교수: 진짜 문제는 ‘21세기형 가짜 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의 가짜 뉴스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유튜브라는 거대한 유통 통로들을 비롯해 디지털 기술이 나날이 발달하면서 수많은 가짜 뉴스들이 생산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박 팀장: 예나 지금이나 가짜 뉴스가 이렇게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 교수: 전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둘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와 ‘확증편향’ 탓입니다. 현대사회는 ‘클릭이 곧 돈으로 연결되는 경제구조’입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가짜 뉴스를 만든 마케도니아의 벨레스 청소년들도 그 가짜 뉴스를 클릭한 사람들에 의해 거액을 벌었다고 합니다. 돈이 되니 가짜 뉴스를 안 만들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가짜 뉴스’를 주제로 대담하고 있는 김지영 동양대 교수와 박지순 취재1팀장(왼쪽).
-박 팀장: 확증편향은 무엇입니까.
▲김 교수: 내용이 옳건 그르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을 말합니다. 여기에 이용자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제공하는 ‘필터 버블’까지 더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단순히 보도 문제가 아니라, 세계 문명 자체가 이상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탈진실의 시대’가 그래서 도래한 것입니다.
-박 팀장: 탈진실의 시대는 무엇입니까.
▲김 교수: 네, 탈진실의 시대는 옥스퍼드사전이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단어입니다.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이나 감정적 호소가 여론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말합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과 보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가짜가 진짜를 이기고 있습니다.
-박 팀장: 가짜 뉴스를 식별하기가 쉽다면 지금처럼 가짜 뉴스가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짜 뉴스를 식별할 수 있는 기준이라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교수: 가짜 뉴스를 식별하는 방법이라고 해서 한 유명 미국 연구기관에서 내놓은 8가지 목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개인이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의 예전 기사들을 다 확인해 본다’, ‘전문가에게 물어 본다’와 같은 사항들이었습니다. 맞는 말들이긴 하지만, 조작된 팩트를 개인이 식별하기 쉽지 않고 매번 전문가에게 물어보긴 어렵습니다. 결국 팩트 체킹을 하는 기관이나 조직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박 팀장: 가짜 뉴스가 생산되는 데에는 전통 언론들의 책임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 교수: 맞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전통 언론, 특히 기자들이 팩트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통 언론의 기자들조차 3가지 잘못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가 그렇습니다. ‘알려졌다’나 ‘전해졌다’, ‘점쳐졌다’처럼 피동형 종결어미로 문장을 맺어 버리는 겁니다. 남의 기사를 그대로 베끼는 등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않거나 확인하지 못해서 추측성으로 내고 있는 것입니다.
-박 팀장: 두 번째 잘못은 무엇입니까.
▲김 교수: ‘익명을 남용한다’는 점입니다. 취재원을 정확히 밝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기사에 실린 사례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지, 가공한 인물인지 의심될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낚시성 제목’도 문제입니다. 제목은 본문에 있는 내용을 담아 써야 하는데, 많은 기사들에서 본문 내용과 다르게 자극적인 제목을 거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가짜 뉴스가 자라게 하고 있는 잘못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팀장: 언론계 내부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 교수: 맞습니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보루입니다. 민주주의에서 핀 꽃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저널리즘이 훼손되면 민주주의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아마 무엇이 문제인지는 이미 다들 잘 알고 있는데, 생존을 위해 실천을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미디어 생태계는 급변하고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소비 모든 걸 1인이 해결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대부분 언론들은 광고 수익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광고를 유치하거나 광고주 입맛에 맞추기 위해 저널리즘 원칙에 어긋나는 광고성이나 홍보성 기사를 쓰기도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국민을 대표해서 권력을 감시하는 기관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나 이념보다 이 원칙을 언제나 우선해야 합니다.
-박 팀장: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가짜 뉴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김 교수: 예전에 ‘문맹 교육’이 있었다면 지금은 ‘미디어 교육’이 필요합니다. 정보 수용자들의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각종 미디어 정보를 수용자가 주체성을 갖고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오늘날 가짜 뉴스냐 진짜 뉴스냐 하는 것은 결국 ‘문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문맹을 탈피하는 것처럼 가짜 뉴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한 겁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미디어 교육이 너무 안 이뤄지고 있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과 다릅니다. 전혀 모르는 것과 조금이라도 아는 것은 정말 큰 차이를 갖습니다. 정부와 관련 기관, 가정 등 사회 어디에서든 관심 갖고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기자들을 포함해 언론 매체 종사자들에게는 입사 후 중간 교육도 필요하고 말입니다.
-박 팀장: 한국 가톨릭교회도 가짜 뉴스에 대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실천사항들이 있다면 설명해 주십시오.
▲김 교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속적으로 가짜 뉴스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지난해 5월 13일 홍보 주일을 앞두고도 가짜 뉴스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교황님 말씀을 따라 ‘복창’은 잘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쌍방향 소통 시대인데, 교회의 강한 ‘성직자 중심주의’ 탓에 소통도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짜 뉴스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나 대응방법을 잘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정리·사진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