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회는 갈수록 어지럽기만 하다. 유괴, 인신매매, 성폭행, 살인, 자살 등의 민생사범과 부동산투기와 물가고로 인한 경제불안 등은 끊일 날이 없더니, 최근에는 국회의원의 뇌물외유사건, 예체능계 대학임시부정사건, 그리고 수서택지 의혹사건 등 일련의 심각한 부정부패의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른바 ‘총체적난국’에 대처하여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일개 국가의 최고 통치자의 공포는 공포로 끝나고만 것 같다.
오늘 우리의 정치·행정·경제·사법·교육·문화·종교·언론이 총체적으로 왜 이렇게 되었는가.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범죄의 동기는 거의가 돈, 돈이다. 우려했던 황금만능주의의 병폐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이미 알려진 위에서와 같은 부정과 부패, 비리와 범죄는 그전부터 내려온 관행이며,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라고들 한다.
그것은 정(政) 경(經) 관(官)의 제도화된 구조적인 비리와 부패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잇단 부정무패사건은 단순한 법과 체제나 구조만의 문제도 아니며 더구나 사람과 정권을 바꾸면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한 시인은 “그놈이 그 놈이다. 도적놈들!… 이 사회는…기회가 안주어져서 그렇지 주어지기만 하면 순식간에 백탕 천탕 해먹을 정신무장이 단단히 돼 있는 사람들 천지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와서는, 오늘의 사회에서 경제가치를 우선함으로써 도덕성이 실종되고 가치관이 상실되므로 도덕성을 회복하고 가치관을 확립하고자 모두들 아우성이다. 새 생활·새 질서에 앞장서자는 표어와 현수막이 거리를 요란스럽게 메우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도덕성과 가치관을 부르짖어대자 도저히 그것이 회복되고 확립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정치·경제·사회·교육·종교분야에서 어떤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신문의 글이나 텔레비전의 대담에서는 도덕의 타락과 가치관의 상실만을 논할 뿐 한 걸음 나아가서 그것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부재·상실·소외를 논하고 따라서 인간의 회복과 인간의 발견을 강조하는 것은 읽거나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을 올바로 회복하고 발견하지 않고는 도덕을 회복하거나 가치관을 수립할 수 없다. 인간을 원리나 목적으로 삼지 아니하고는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종교의 사회 모두가 올바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인간이 하는 그 모든 것은 바로 인간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 인간을 위해서 있을, 또는 사용되어야 할 돈이나 재산을 사람에게 손해를 가하는 부담한 방법(불법이나 탈법)으로 획득하는 것이 바로 부정과 부패, 비리와 범죄인 것이다. 그리고 가진 자가 아무리 자기의 것일지라도 그것을 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서 마땅히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필요하지 않는 일이나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사치, 낭비, 과소비의 악덕인 것이다. 인생은 본래 나의 도움을 보다 필요로 하는 이웃의 어떤 누군가를 위해서 나의 삶을 살고 나의 가진 것을 베풀 때, 참되고 보람되며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법이다.
이와 같은 삶에 비로소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불교의 자비가 있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있다. 바로 여기에 사회정의와 복지사회가 완성되며, 줄곧 부르짖어왔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던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와 자유가 인정된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세상의 모든 것이 목적으로 하는 최고가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좋다하지만 돈은 인간을 위해서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부버의 ‘당신과 그것’(Thou and lt)처럼 ‘존재와 소유’를 엄격히 구별했다. 이는 인격의 존재와 사물의 소유를 말한다. 소유하는 모든 것은 인격의 존재를 위해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소유가 인격적 존재인 인간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의미와 가치가 없다.
오늘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보다 큰 것을, 그리고 보다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의 시대를 소유의 시대라고들 한다. 한평생 소유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까 소유의 목적인 인간은 상실ㆍ망각ㆍ소외되어 버림으로써 인간부재, 인간상실, 인간소외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사람들은 본래 인간을 목적으로 하는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소유의 대명사인 돈만을 생각한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인간을 위해서 사용하고 나누어서 가지고 베풀거나 봉사할 줄을 모른다면, 인생은 허무하고 공허하다. 많은 돈이나 재산, 많은 땅이나 큰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용하게 사용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이 없어서 먹고, 일고, 드러누울 집이나 방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부자와 그 집 대문간에서 구걸하는 거지 라자로”(루카 16,19-31)의 이야기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루카 18, 25)라는 말은 소유를 목적으로 하지 말고, 그것을 보다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서 베풀고 사용하라는 뜻이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태오 22,39) 그리고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루카 9,25)하는 것은 세상에서 최고 가치의 존재인 인격을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말이다. 사랑은 본래 인격 상호간의 실존적 관계이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페르소나(위격)를 지닌 신격의 존재이기 때문이며,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도 하느님의 모습인 페르소나를 지닌 인격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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