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하고 곱게 생긴 새댁이 치과문을 살포시 밀고 들어왔다. 진찰을 해보니 외모와는 달리 치질이 약해서 구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치질이 약하면 쉽게 충치가 생기므로 치아관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어야겠는데,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기에 이례적으로 내 방으로 불렀다. 나는 조심스럽게 “치질 때문에 문제네요”라고 말하니까, 갑자기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하면서 들릴 듯 말듯 모기소리로 “애들 낳고나서부터 치질이 생겼는데, 사실 큰 고생을 합니다. 이를 보면 치질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나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동문서답도 유분수지 나는 상수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새댁은 뜻밖에도 정화조 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마주 앉아 대화를 해도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의 대화에는 얼마나 많은 동문서답이 있겠는가. 나의 어릴 때의 기도가 생각난다.
내가 일곱살 때 부친께서 돌아 가셨지만 또순이이신 모친은 기질답게 경제적인 어려움은 느끼지 않게 해주셨으며 교회 일도 남보다 훨씬 열심히 하셨다. 나는 속으로 주님 사업을 하니까 하느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믿었고 이런 하느님의 마음이 우리를 떠나지 않게 되길 기대하며 열심히 기도했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어떤 자매님의 보증을 섰다가 졸지에 망해버렸다. 재물을 다 빼앗기고 단칸방으로 쫓겨 가던 날, 어머님은 맨 먼저 고상을 걸고 밥상 위에 횐 포를 깐 후 성모상을 모시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화가 나서 성모상을 집어 던지며 “우리 성단에서 우리만큼 열심한 교우가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하느님! 상급을 주시는지는 못할망정 왜 벌을 주십니까?”라고 울부짖었다.
그때까지 나는 주님은 빌면 복을 내려주는 요술 방망이요,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주는 훈육 주임으로 생각했었다. 철이 들고 하느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의 시련을 주심은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나를 이끌어주신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의 배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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