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에 ‘쇠똥구리’라는 희한한 곤충이 살고 있다. 지방에 따라 쇠똥풍뎅이나 말똥구리라고 다르게 부르고 있지만 갈은 종류다. 이름대로 이 곤충의 먹이는 소나 말의 배설물인 셈이다.
생물 중에서 가장 종류가 많기로는 곤충이 으뜸이며, 옛날부터 우리 인간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어서 더욱 흥미로운 정감을 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자들은 곤충이 혐오감을 준다고 ‘벌레’로 불러 오고 있으니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먹고 살아가는 방법에서는 사람이나 곤충은 원칙적으로 식물이 주식이다. 대부분이 이러한데 약간의 곤충들은 식물 아닌 다른 것 즉, 작은 동물을 먹거나, 온혈동물에 기생하여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무서운 질병을 옮겨 주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꿀벌이 꿀을 모아주는 일이나 누에가 비단실을 만들어 주는 일은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중요한 곤충으로 대표된다. 여기서 쇠똥구리를 등장시킨 것은 요즘 세상과 견주어보고 싶은 생각에서이다.
쇠똥구리는 땅속에 집을 지어 가족단위로 살아간다. ‘파브르의 곤충기’에서 언급된 대로 이 곤충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들이 배워야할 점이 많이 있다고 본다. 우선, 이 곤충이 식량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어른이 된 한 쌍이 가축이 사는 목장에서 흔히 보게 되는 말똥이나 쇠똥 중 오래되지 않은 신선하고 적당히 수분을 함유한 것만을 식량으로 한다. 오래된 것은 먹이로는 불량품인 셈이다. 수십종류의 풍뎅이 중에는 실컷 먹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짚시풍인 것도 있고, 며칠을 그 속에서 계속 먹고살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이사형도 있다. 그러나 쇠똥구리만은 먹이를 발견하게 되면 암수 한 쌍의 부부가 부지런히 구슬만큼한 경단을 만들어 다지고 또 다져서 깨어지지 않는 둥근 먹이를 만든다.
이들이 왜 둥근 먹이를 만드는가? 우선 자기 집까지 떼굴떼굴 굴러가기 쉬워서 좋고 어린 식구들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먹이가 없어질 겨울을 대비하여 충분한 월동식량을 비축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식량을 준비하는 모습은 진지하기도 하려니와 경이로워 매우 탄복할 지경이다. 이들은 밤낮없이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우리 인간세상과 같이 우리들 몫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몫만 찾아 헤매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의 몫을 힘으로 빼앗거나 꾀를 내어 훔쳐 오는 일도 없다. 또한 놀라운 것은 필요한 만큼 식량을 저장할 뿐 낭비하는 일이 없다. 오직 적당하게 필요한 식량을 구하는 지혜를 갖고 있으니 인간보다 자연의 법칙이나 섭리를 잘 이해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생물이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량의 먹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생물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먹이전쟁은 때로는 처절한 면이 많이 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뀐 언저리엔 이들 생물이 얻어야할 식량이 풍성하게 남게 된다. 어떤 것들은 고기를 취해 먹이를 삼으며, 어떤 것들은 식물인 풀이나 나무에서 넉넉한 먹이공급을 받는다. 이러한 변화는 ‘생물계의 평형’으로 표현되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이나 기능이 만족하게 유지된다. 그렇지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은 그렇지 못하며 사회적인 혼란이 끊이지 않는 부도덕한 환경 때문에 하나뿐인 양심에 의지하며 성실히 살아보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종 시대에 뒤처진 자로 대접받고 있거나 이들이 자책감에 무안함을 느끼게 되었다면 우리사회는 분명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작은 곤충인 쇠똥구리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어떤 것이 선이고 어디까지가 진실된 삶인지 쉽게 알게 된다.
다만 우리들의 관습이 어느 틈에 이 같은 진실한 삶의 자체마저도 값없는 것으로 돌려버린 당연한 결과는 아닌지? 이 아름다운 별 지구위에 살아가는 내 모습은 어떤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이다. 인간보다 뛰어난 재능을 부여받은 생물이 또 있는가? 없다면 우리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대로도 만족스러운 상태인가? 가정에서는 가정대로 사회는 사회 나름대로 정확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잘못 들어선 길은 빨리 고쳐 잡아 새로운 길을 찾아야한다. 세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식들 아니 그들 뒤를 이어갈 후손들의 것으로 다듬고 가꾸어 넘겨주어야 하므로 더욱 자연스러운 세상, 밝은 세상, 어질고 바보스런 세상으로 바뀌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흔히 세계는 아름다운데 세상은 험하다고 말한다. 험한 세상은 사람이 만들었기에 사람의 노력 없이 바로 잘을 수가 없다.
질서가 무너진 세상에서 다시 새로운 옛날의 모습을 찾는 일도 우리가 말아야 한다. 이 같은 일은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고, 더욱 돈 생기는 일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발 벗고 나서서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그것은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으므로 따지고 보면 ‘내 탓’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계절의 변화를 통해 우리에게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는 믿음을 통해 선과 악을 구별하는 마음을 가꾸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계속되는 한 요즘같이 험한 세상은 차츰 좋은 세상으로 바뀌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들은 내 몫을 구하기전에 우리들 몫을 얻는데 서로 힘을 모아야겠다. 그리고 내 것을 나누어주는 힘든 일보다 꼭 알맞게 내 것을 찾는 지혜를 터득해야겠다. 적당하게만 갖고, 이웃들과 같이 갖는 노력이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우리와 같이 살고 있다. 우리기 얻는 것을 이들도 똑같이 얻어 살지만 인간과 같이 생각하며 느끼고 감격해 하거나 비통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이성은 부여받지 못했다. 쇠똥구리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알맞게 먹을 것을 나누어 갖는 노력이나 지혜를 아직도 우리들이 찾으려 하지 않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보잘것없는 ‘쇠똥구리 세상’보다 무엇이 더 좋은가. 부끄러운 세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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