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죽을 삼켰으나 그래도 목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코를 통하여 위속에 삽입한 튜브가 목에 걸쳐져 있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점심으로 나온 죽을 반 정도 먹었다.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나를 지켜보는 아내의 눈에 눈물바울이 반짝였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당신의 기적의 은총이 아니고서 어찌 이 죄인이 입으로 음식을 먹고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후 3시경 주치의 수행의사인 최진섭 선생이 와서 점심은 잘 먹었는지 확인을 한다. 나는 죽을 반 정도 먹었다는 것과 사레가 들지 않을까 무서워서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는 말을 하였더니 최진섭 선생의 말이 물을 마셔서 사레가 들지 않으면 다른 음식을 먹어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어 저녁에 배식된 죽을 다 먹었다.
1988년 1월 17일
오전 8시경 퇴진시 박정수 선생은 어제 저녁식사의 사항을 확인 후 위에 삽입된 튜브를 제거했다. 매우 홀가분했다. 작년 크리스마스날까지만 해도 기도폐쇄수술이 확정되어 여생을 벙어리로 살 것을 각오한 나에게 수술예정일 하루 전에 목 속의 기능을 기적적으로 회생시켜 엄청난 은총들을 내려주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영원히 바칠 따름이다. “주여! 당신의 섭리는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이 감격과 감사함을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기 위하여 앞으로의 생애를 당신께 바치겠나이다.”
1989년 1월 26일
1월 18일 방사선 물질을 마시고 그 치료를 위하여 1인용 병실로 옮겨왔다. 방사선물질을 마시고 난 후부터 다른 사람과의 접촉은 일절 금하고 있으며 보호자도 환자와 2m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이곳으로 옮기기 전에 같은 병실 옆침대에 입원해있던, 부산에서 온 20대초의 청년이 그 어머니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 그 청년은 가톨릭 신자로서 나의 옆 침대에 있으면서 나에 대한 기적의 은총을 목격 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일 퇴원한다고 말하고 주교님으로부터 선물받은 귀중한 것이라고 하면서 묵주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성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어달라면서 기도를 바쳐주고 간다. 나는 그때 그 청년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아두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만약에 그분이 이글을 읽으시는 일이 있으시면 343~53~3614로 연락바랍니다)
1989년 1월 28일
오늘은 입원 81일만에 퇴원하는 날이다. 지난 81일 동안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꼭 죽는 줄로만 알았던 목숨을 구해주시고 그 후 기도폐쇄수술로 여생을 벙어리로 살게 될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수술실시 28시간 전에 바꿔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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