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시골장터에서 구입한 오천원짜리 전자손목시계가 신기하게도 정확하게 잘 돌아간다. 그때 당시 선심 쓰는 셈치고 공소에서 고생하는 선교사들에게 선물하였는데 지금까지 나에게 자랑을 한다.
나는 싸구려 상품이나 중고를 좋아한다. 양복·자동차·자전거 등 내 소유물들이 부담 없이 사용하기가 편하다.
신학교 다닐 때 주교님께서 하사하신 주교님의 낡은 양복이며 수단을 잽싸게 가져와 지금까지 10년 동안 입고 있다. 주교님의 체취도 맛보고 옷이 커서 겨울철에는 입기에 편리하다.
신학생 때에는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땐 산보삼아 학교 쓰레기장에 가보면 아쉬운 것이 모두 있었다. 양말·구두·슬리퍼·가방 심지어 남자 속내의도 제법 쓸 만한 것이 있어서 세탁한 후 부담 없이 사용하곤 하였다.
나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면서 쓸 만한 물건이 있을 땐 승리자가 된 것같은 느낌도 들었으며 폐품을 사용할 때 왠지 행복감마저 느끼곤 하였다.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신학생 때 보다는 나은 지금의 자금사정이지만 그래도 중고를 잘 이용한다. 중고 자전거는 본당학생들이 끌고 다니고 중고 자동차는 신자들이 공동으로 굴리고 부담 없어서 좋다.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이 쉽게 망가지고 도둑맞았을 때의 실망감이 없는 것도 하나의 행복이 아니겠느냐고 자위해 본다.
새 것·일류물건을 선호하는 세상에 나는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혼수준비·학생들의 일용품이 너무 비싸고 호화로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시골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건인데 신발가게에 도둑이 자주 든단다. 주로 도난품은 학생운동회인데 일류메이커 운동화가 몇 켤레이다. 가난한 학생들이 얼마나 신고 싶었으면 도둑질을 할까. 사회가 그렇게 만드는 것 아닐까.
나는 얼마 전 신설본당에 부임했다. 옷장·책장·책상 등 가구들을 몽땅 30만원에 구입했다. 싸구려지만 가난한 공소신자들이 구입해준 것이다. 애착이 가고 겉으로는 번지르르하니 구색이 맞는 것이 아닌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