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2일부터 올해 1월 23까지 45일간의 유럽여행은 편협하고 안이했던 나의 사고와 실천활동 그 모두를 재고하게끔 했던 중요한 시간들이었다. 연말연시를 지난 시간들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맞이하는 시간들에 대한 실천적 계획의 적기로 삼는 몇몇 사람들과는 달리, 늘 평범하게(?) 지내곤 했던 나는 30대를 맞는 이 시기만큼은 뭔가 달라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유럽사회는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가 그 사상적 연원을 이뤄, 그네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건축양식 등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가톨릭신자라는 정신적·지식적 배경은 유럽사회를 바라보는데 어느 정도 명확한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더욱이 이시기는 교회력으로 대림과 성탄, 주의 공현으로 이어지는 거룩한 시기여서, 유럽의 각 성당들은 이러한 전례력의 흐름 속에서 성당행사와 장식 등을 통해 구세사의 중요한 의미들을 그대로 보여 주었던 것이다.
유럽의 성당들은 그 오랜 역사에 걸맞게 각각의 종교사적 유물과 유적을 지니고 있었으며, 성당의 구조도 기도하고 미사드리는 소공간들이 최우선적으로 배려되어 있어, 보통 10여개가 넘는 기도실에서 어느 때고 기도드리는 성초의 불꽃이 꺼지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미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아래, 사제와 평신도의 역할이 고르게 분배되어 있었으며 엄숙하면서도 온화한 분위기에서 봉헌되고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각 성당의 성체의 감촉과 크기가 달라서 영할 때마다 묘한 설렘을 느꼈던 것과 각국의 언어는 달랐지만 그 절차와 방식은 거의 같아 어느 나라의 마사에 참례해서도 동일한 참여의식과 색다른 감회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때마침 성탄시기여서, 각 성당 특유의 구유장식을 보았는데, 그 재료가 유리·종이·볏짚·헝겊·진흙으로 특색을 살려 다양하며 소박하게 꾸민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흔히들, 서구사회에 있어서 가톨릭의 전반적 쇠퇴를 얘기하나 이는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숫자, 신영세자의 숫자, 굵직한 행사에 동원되는 신자들의 숫자 등등을 중요시하는 ‘우리 신앙생활에 숨어있는 심각한 덫’ 즉 숫자놀이에 빠져있는 우리의 현 수준을 반영하는듯하여 씁쓸하다. 그리고 1천명 이상을 수용하는 매머드대성당 하나에 변변한 성체조배실 하나 없고, 군데군데 성상과 성화들이 놓여 있지만 전반적으로 썰렁한 본당건물을 가진 우리의 현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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